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바른 세상살이 (연중27주일)

이종훈

바른 세상살이 (연중27주일)

 

예수님은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여러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그 비유 말씀의 소재는 대부분 청중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업과 관계된 일, 삶 속에 있는 상식적인 것,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을 법한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씨 뿌리기, 양치기, 밀가루 반죽, 집안 청소, 아버지와 아들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관계, 물고기 잡기 그리고 잔칫집 분위기,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생활, 전쟁(루카 14,31-32)과 권력에 관한 이야기(루카 19,12.27) 등 청중들의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비유 이야기의 소재로 삼으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고고학적, 인류학적인 증거들을 들면서 예수님은 그런 일들의 거의 전문적인 지식들을 지니고 계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씨앗이 자라는 과정과 물고기들의 생리 그리고 돌무화과나무가 얼마나 단단하고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튼튼한지 알고 계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머리가 좋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관찰자와 감시자로서가 아니라 그분도 우리처럼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세상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과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그 모습은 많이 다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 안에는 언제나 사건과 사고 그리고 집단 사이의 갈등이 있어왔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북핵과 사드배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 커지는 소득의 불균형과 계층 갈등, 청년 실업률과 불안한 고용, 낮은 출산율, 개선되지 않는 정치인들의 모습, 상상도 되지 않는 거액의 뒷돈 거래, 지진의 공포 그리고 최근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죽음 등이 요즘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신에게 가까운 것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 하나도 자신의 삶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이런 곳 안에서 세상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이 세상살이를 하신다고 믿습니다.

 

세례로 우리는 세상에 죽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등지고 내세의 삶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세상에서 살 때와 성당에서 예배드릴 때의 마음이 서로 다른 사람들은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세상일에 관심과 애정을 지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에 그러셨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우선 자신의 생업과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 다음 사회와 나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구체적인 세상살이 안에서 그것을 적용하고 실현하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서도 그렇겠지만 너와 나의 옳음이 서로 다름이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이해관계 그리고 단순한 기호에 따라 서로 다르게 주장합니다. 자신이 비록 죄인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선한 삶과 완전한 사랑을 바랍니다. 자신이 그렇다면 상대방도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곳을 바라보는 데, 왜 서로 반대편에서 상대를 비방하는 걸까요? 나는 옳고 그는 그른 것일까요? 그러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선하시고 옳게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의 이 다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런 갈등과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너와 내가 다르다고 상대를 배척하고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것은 죽고 사는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상살이입니다. 그의 언행 그리고 사회분위기와 법규범이 세상살이를 어렵게 하고 희망을 잃어버리게 한다면, 우리는 그 반대편에 서서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보수든 진보든, 그리스도인이든 다른 종교이든 생명과 세상살이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저항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의 마음을 바꾸고 제도와 법을 고칠 수 없어도 끝까지 외쳐야 합니다. 때로는 그런 외침들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와서 기운 빠지고 심지어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의심이 들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외쳐야 합니다. 그 외침은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고,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바꾹 예언자가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며 외치고 또 외쳐도 대답 없는 하느님께 실망하고 지쳐갈 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하바꾹 2,2-4).” 그 환시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승리와 불의하게 고통 받던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이고,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일 겁니다.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라고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고, 상대방에게 적대감을 지니지 않은 채 ‘아니오.’라고 외치게 하는 힘은 내 안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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