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의 기도 (연중 29주일)

이종훈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의 기도 (연중 29주일)

 

기도는 하느님과 나 사이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언제나 친밀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과 친해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당신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들으신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요한 15,15). 친한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을뿐더러, 자신의 어려움과 부끄러움까지도 공유합니다. 친할수록 서로를 가리는 것이 작습니다. 기도의 큰 스승이신 아빌라 데레사 성인은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며, 기도는 예수님과 나누는 복음적 우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박사라고 불리는 알폰소 성인은 배움이 짧은 신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가장 친한 친구보다 더 친근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하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가르침들을 보면 기도는 어렵고, 심오하고, 신비로워서 특별한 이들만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아닙니다.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나아가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과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하느님과 친해지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살이를 하려고 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어 놓거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억지로 얻어내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 마음을 바꾸는 것이 기도이고, 그러는 사이에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또 오랜 시간 기도해야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원을 들어주시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기도를 얼마나 오래했느냐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느냐가 기도 중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여는 만큼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몸뚱이가 재산입니다. 육체적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온 몸으로 부르짖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뇌물로 줄 돈도, 그 일을 해결할 힘도 없으니 주무관청 앞에서 그리고 길바닥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모욕을 무릅쓰고 사정하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고 유일한 수단입니다. 하느님과 자신 사이 가림 없는 친밀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과 자주 만나다보면 그분 앞에서 진솔해지고 그래서 가난한 자신을 발견하여 하느님과 친해집니다. 세상은 가난한 이들의 외침과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고, 끝에 가서 어쩔 수 없을 때 그렇게 해줍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루카 18,7-8). 하느님은 “당신께 선택된 이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그 즉시 내려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원하고 내게 유리한 대로가 아니라 올바르게 판결해달라고 청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건을 정의롭게 올바로 판단해줄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재심도 삼심도 필요 없이 단 한 번으로 완전한 판결입니다.

 

하느님의 판결은 청원자 자신도 두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판결해달라고 조를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가난함 안에 있습니다. 한국 신자들은 혼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9일기도, 54일기도가 거기에 속합니다. 9일기도의 숫자 9는 상징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 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다락방에서 오순절 전 날까지 9일 동안 기도했고, 1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약속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사도 1,13-14; 2,1-3). 9일간의 지극정성이 성령을 불러 내린 것이 아니라, 9일간의 기도가 사도들을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킨 것입니다. 하느님의 그 올바른 판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이에게는 10일이, 또 어떤 이에는 100일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동안 기도자는 자신의 바라고 청하는 것의 실체를 점점 잘 보게 되고 더불어 자신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기도하는 동안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가까워진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과 청원이 이루어지고 또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이고 목적입니다. 하느님과 친해지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가 그저 그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이 가난한 자임을 알고 그분에게 청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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