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전교(연중 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종훈

전교(연중 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다니다보면 지하철 역 입구에서 개신교회에서 나오신 분들이 물티슈나 과자와 함께 나눠주는 그 교회 주보나 소식지를 받곤 합니다. 소식지만 주면 잘 안 받겠지만, 물티슈 같은 것들을 주니 고맙게 받습니다. 가끔 그것을 읽어 보기는 하지만 대부분 가장 가까운 휴지통에 버립니다. 펼쳐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버려진 소식지가 수북하게 쌓여 넘쳐 길바닥에도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합니다. 그 교회에서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선교활동이라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과 지식은 여기저기 넘쳐나고, 한국사람 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교회내의 조직보다 좋은 동아리나 봉사단체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많이 변했는데, 교회의 선교 활동의 방식은 아직도 고전적인 것 같습니다. 교회의 목적과 정체는 선교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유일성이나 우수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복음입니다. 오랜 전에는 서구 열강들일 총칼을 앞세워 다른 약소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를 강제로 주입시켰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선 서구 물질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는 거의 동일시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어릴 때 기억에도 사제관에 가면 신기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맛있는 과자를 얻어먹었고 아주 좋은 커피와 파이프 담배 향기가 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오늘날 사제관 안에는 신기한 것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교회가 했던 다양한 봉사들도 이제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다른 많은 민간단체들이 맡아서 합니다. 그동안 교회는 전례와 말씀과 더불어 서구의 앞선 물질문화와 제도, 좋은 교육과 복지시설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는 말씀과 전례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영성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인간의 영은 생명이고 생각, 말, 결정, 행동 등 삶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관입니다. 그 안에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은 흉측할 것이고, 반대로 사랑과 고귀한 것들로 찬 사람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곧 그분의 마음이고 삶의 의미이며 그분의 영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셨으니 마음과 행동이 다를 수 없고, 속과 겉이 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이런 삶을 본받고 그분의 영으로 자신의 영을 채우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것이고, 그렇게 살려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당신의 몇몇 제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알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의 삶을 봉헌하셨습니다. 그분의 봉헌은 당신을 반대했던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큰 사랑, 하느님의 사랑이 복음이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저의 짝은 신심 깊은 개신교회 집안에서 자란 친구였습니다. 참 순하고 착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결국 싸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종교와 교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싸우게 된 이유는 자신의 종교가 우수하다고 참된 것이라고 서로 우겼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현대는 다원화된 세상이라고 합니다. 다원화란 우열이 아니라 다양성입니다. 극단적인 다원화가 개인주의를 낳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문화와 종교만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와 그 밖의 다른 소수 종교와 문화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이웃이 지닌 선한 것들을 기꺼이 배워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 간의 대화의 목적일 겁니다. 오늘날 고립과 독선은 곧 죽음입니다.

 

중학교 1학년 초에 장래의 희망을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사제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신을 어떻게 믿게 되었느냐고 물으셨고, 저는 그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하느님을 보았으니 믿는다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으셨는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으셨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 대답을 한 제가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누가 하느님을 보았고, 누가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을 알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입니다. 주님을 더 굳게 믿게 해달라고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아름답게 그리고 신성하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들을 수 없는 말씀을 말하고, 느낄 수조차 없는 그분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하려고 하니,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아름답고 또 신성하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고 동물적인 본성을 거스르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으려하는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살지 못하면 우리 선교는 소음이고, 시간과 정력 낭비입니다. 게다가 조바심이 생기면 우리의 선교는 폭력이 될 지도 모릅니다. 더욱 예수님께로 집중하고 더 사랑해야 하는 때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553 [이종훈] 나해 4월 26일 담장 너머(+MP3) 2021-04-26
1552 [이종훈] 나해 4월 25일(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MP3) 2021-04-25
1551 [이종훈] 나해 4월 24일 주님의 영(+MP3) 2021-04-24
1550 [이종훈] 나해 4월 23일 영혼의 음식(+MP3) 2021-04-23
1549 [이종훈] 나해 4월 22일 하느님의 방식(+MP3) 2021-04-22
1548 [이종훈] 나해 4월 21일 선물(+MP3) 2021-04-21
1547 [이종훈] 나해 4월 20일 가벼운 짐(+MP3) 2021-04-20
1546 [이종훈] 나해 4월 19일 청원기도(+MP3) 2021-04-19
1545 [이종훈] 나해 4월 18일(부활 제3주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MP3) 2021-04-18
1544 [이종훈] 나해 4월 17일 나타나시는 하느님(+MP3) 2021-04-17
1543 [이종훈] 나해 4월 16일 여기 있습니다(+MP3) 2021-04-16
1542 [이종훈] 나해 4월 15일 하느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MP3) 2021-04-15
1541 [이종훈] 나해 4월 14일 하느님의 아이(+MP3) 2021-04-14
1540 [이종훈] 나해 4월 13일 하느님 손길의 흔적(+MP3) 2021-04-13
1539 [이종훈] 나해 4월 12일 번역(+MP3) 2021-04-12
1538 [이종훈] 나해 4월 11일(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 용서하는 사람(+MP3) 2021-04-11
1537 [이종훈] 나해 4월 10일 반가운 꾸지람(+MP3) 2021-04-10
1536 [이종훈] 나해 4월 9일 교회가 사는 방식(+MP3) 2021-04-09
1535 [이종훈] 나해 4월 8일 주님의 육체(+MP3) 2021-04-08
1534 [이종훈] 나해 4월 7일 이야기(+MP3)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