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19일 하느님을 위한 축제

이종훈

7월 19일 하느님을 위한 축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날을 기념하는 축제가 파스카이다. 탈출하는 바로 그날 밤에 어린 양이나 염소고기, 누룩 없이 만든 빵, 쓴 나물을 서서 서둘러 먹은 것이 축제의 기원이다. 그것을 하느님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탈출 11,11)”라고 부르게 하셨다. 노예생활에서 해방돼서 기쁜 이들은 정작 백성들인데 그것이 곧 하느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유다인이셨던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진정한 파스카 축제로 여기셨다. 그 희생과 봉헌이 아버지 하느님께 가장 큰 기쁨이라고 확신하셨을 것이다. 완전한 “주님을 위한 축제”이다. 외아들의 죽음이 완전한 축제라니 듣기 거북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느님이다. 우리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당신을 섬기며 ‘영과 진리 안에서 당신께 예배(요한 4,24)’드림이 당신께 완전한 기쁨이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한 4,24).

 

우리는 하느님의 기쁨이어야 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아드님까지 희생시켜 만들어 쟁여두신 하느님의 그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선물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선물을 받아야 하고 그것이 하느님의 바람이며 기쁨이다. ‘우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이사 1,18)’ 만들어주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그런데 누가 감히 그런 분에게 우리 죄를 고발하고 심판하겠는가? 죄도 그 선물을 치우지 못하는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그것을 막는다. 그것도 하느님의 법을 연구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화를 내시며 맞서셨을 것이다.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한낱 인간들이 아버지의 그 큰 기쁨을 가로채니 말이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함이지 법규범을 어김이 아니다. 법을 어김이 죄라면 순교자 공경은 사라진다. 그분들은 법규범을 어긴 사람들이었으니까. 삶의 자리가 바뀌면 법도 바뀐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변하지 않는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계명이 주일미사에 참례 의무와 똑같지 않다. 삶이 변해 일요일에 미사 참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 해 전에서야 주교님들이 그런 교우들을 위한 관면 관련 규정을 내놓았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성체와 성혈은 주님이 주시는 음식이며 약이다. 배고픈 이에게 양식이고 아픈 이에게는 약이다. 성직자는 그것을 나누어주는 봉사자에 불과하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시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치유되고 배부르고 치유되어 자유롭게 되는 게 당신께는 축제이고 기쁨이다.

 

가출한 자녀가 돌아오면 부모는 제일 먼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야단치고 벌주지 않는다. 인간도 그러는데 아들까지 내어놓는 하느님은 얼마나 더 너그러우시겠는가?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죄와 심판이 아니라 너그러움과 자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냥 너그럽고 자비만 베풀면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불평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안다.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이 알아서 하실 거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거룩함은 철저하고 엄격한 율법 준수가 아니라 내가 하느님께 바라고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받은 것이 없어서 못 주는 것이 아니라 주지 않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죄인이라고 단죄한 그들이 주님께는 집 나가 고생하고 돌아온 배고프고 아픈 딸 아들로 보였지요? 저도 주님의 그 자비와 사랑을 원합니다. 그런데도 자꾸 단죄와 심판하는 자리에 서고 싶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자비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가 그 큰 용서와 자비를 입어 자유로워진 죄인임을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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