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우리 뒤에 오시는 분(대림 3주일)

이종훈

우리 뒤에 오시는 분(대림 3주일)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로 구약과 신약의 시대를 이어주는 다리였습니다. 그를 두고 예수님은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마태 11,9.11). 그것은 그가 그의 바로 뒤에 오실 예수님, 하느님의 약속인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공적으로 완전히 드러내실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의 메시지는 너무 강해서 위협적으로까지 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분은 바로 자기 뒤에, 아니 사람들 가운데에 이미 와 계심도 알고 있었습니다(요한 1,19-27). 자신이 받은 특별한 사명 때문이었는지, 그가 사는 방식은 그의 탄생이야기만큼이나 특별했습니다. 세상과 떨어져서 광야에서 홀로 살면서 오직 하느님이 주시는 음식만 먹고 살았습니다. 철저히 하느님께만 속해 있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느님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폭력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답게 바른 말만 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마태 14,3-4). 그도 사람인지라 불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다가 올 죽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이 끝나가는 데 그리스도 메시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확신했던 그 사람, 예수님(요한 1,29.36)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하셨습니다. 불안해진 그는 그의 제자들을 불러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하고 묻게 합니다. 그분의 행동은 분명히 자신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철저하고 엄격해보이지 않고, 세상과 멀리하기는커녕 죄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셨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니(마태 11,19) 금욕적인 생활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세상과 사람들과 죄인들(약자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셨습니다.

 

비록 요한이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확신대로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셨습니다. 그분은 광야가 아닌 철저히 세상 안에서 사셨고 세상이 만들어주는 음식과 술을 드셨으며 가끔은 율법도 어기시는 것 같았지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주실 분이셨고 당신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시고 존경했던 요한이 불안해하신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전하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4-6).” 이 말씀은 메시아가 오시면 일어날 일들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그의 제자들은 그대로 전했을 것입니다. 그제야 요한은 자신이 말한 대로 자기 뒤에 오시는 그분은 너무나 위대한 분이셔서 자기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존재(마태 1,7)임을 더 깊이 깨달으며 행복했을 겁니다. 외치는 이가 아니라 그 외침 뒤에 오시는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두 달간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어려움보다는 훨씬 더 큰 놀라운 일을 우리 스스로 했습니다. 충격, 분노, 허탈, 수치심을 달래려고 우리는 스스로 광장에 모였고 외쳤습니다. 그 분노와 수치심이 너무 커서 그들을 때리고 모두 다 부숴버리고도 남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들도 같은 심정임을 확인하면서 서로 위로하며 우리는 하나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단계를 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이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그것을 이루는 그 수단도 선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다. 끝까지 평화롭고 무슨 축제라도 벌이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얼마나 슬프고 화났고 속상한 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함께 했던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이런 곳이 아니어야 합니다. 자신의 노력보다는 그의 출신과 뒷배경이 중요한 세상, 권력이든 재력이든 힘만 있으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과 원칙도 바꿀 수 있는 세상, 1%의 사람들을 위해서 99%가 희생해야 하는 세상,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고, 성공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몇몇 사람을 벌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 안에서는 당연히 이루어질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 즉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그러면서도 약자를 배려하고 도와주며 모두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공동체, 소수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는 정치를 원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몇몇 사람이 공작한 거짓 선동을 따라갈 사람은 이제는 없어야하겠고, 이 나라 안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생각할 수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외침은 분노를 넘어 행복이고, 심판을 넘어 변화, 뿌리까지 뼈 속까지 변함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평화와 비폭력 그리고 배려와 연대의식 속에서 외친다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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