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진실과 평화(대림 4주일)

이종훈

진실과 평화(대림 4주일)

 

아직 단풍이 짙었던 어느 가을날 새로운 등산길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어서 미리 등산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로 무작정 그 길에 들어섰습니다. 갈래 길이 나올 때마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습니다. 나름 산과 그 안에 나있는 길들의 모습을 예상하면서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택한 그 길이 예상과 다르게 엉뚱한 곳으로 이어져 있을까봐 불안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하고 갔던 그 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을산은 단풍으로 화려했지만 그 길을 처음 가는 저에게는 그 단풍이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다시 같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미리 인터넷으로 그곳의 지리를 충분히 알아보고 갔습니다. 그런데 산은 이미 모든 길을 다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화려하던 단풍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들만 남아 있는 산은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곳 지리를 알지 못해도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예측가능 할 만큼 다 보였습니다. 가을산은 화려했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는데, 겨울산은 정직해서 그 속이 다 보이니 편안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이시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신의 현존과 생각과 계획을 모두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분의 결정과 계획은 우리 인간에게는 여전히 큰 도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 동정잉태, 하느님의 죽음 그리고 부활. 어느 것 하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만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 스스로도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십자가를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말씀대로 되었고,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다 알리셨습니다. 때가 차자 한 여인을 준비시키셨고 그녀에게 다가가 직접 그 계획을 말씀하시고 그녀의 동의를 구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게 잉태되었음이 곧 하느님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온전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순수함과 요셉의 의로움을 믿고,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그들의 동의와 협조를 제안하셨습니다.

 

어쩌면 두 사람이 혼인해서 함께 살게 된 후에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잉태시키셨으면 더 쉽고 안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지식하게 모든 것을 다 밝히고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역시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분에게는 거짓도, 꼼수도, 눈속임도 없고 성공을 위한 협의조차도 없습니다. 오직 진실만 있을 뿐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도 진실만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거짓을 갖고 있습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 24,3-4).” 그 시편 작가가 노래했듯이, 하느님의 집에서는 오직 진실하고 마음 깨끗한 이들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 집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는 곳이라서 늘 평화로운 곳입니다, 겨울산처럼.

 

우리는 요즘 진실을 밝히느라고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저 시간과 노력으로 더 생산적이고 선한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살기 편하게 만드셨는데, 거짓을 아는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들이 이곳을 어지럽고 불한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이곳을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만들어 가십니다. 재창조하시고, 회복시키는 중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마음과 손을 사용하십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당신이 사랑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려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밝히시고 알리십니다. 그 때처럼 우리의 동의를 구하시고, 그 결정을 우리들의 마음에 맡기시며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악하지는 않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하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악은 하느님 근처에 가려고 하지도 않지만, 사실 그분이 어디 계신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연약해서 선을 행하는 이들이 당했던 고통과 어려움,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연약하지만 하느님을 따르려는 우리들에게 은총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로마 1,5-6).” 마리아와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구원이고, 그 순종은 진실을 말하고 진리인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명성과 지위와 재물 같은 것들에서 기쁨과 행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부와 명성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집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부와 명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허기지고 담장을 더 높이 쌓아 자신을 꽁꽁 숨기게 되지만, 하느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넉넉하고 자신으로 들어오는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불안하지 않고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여름산은 무성하고 가을산은 화려하지만 그 속에서는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겨울산은 정직해서 모든 길이 잘 보이고 그래서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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