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선물 (성탄대축일)

이종훈

선물 (성탄대축일)

 

성탄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보통 감사와 축하, 어떤 때는 숨겨진 어떤 대가를 담고 있지만, 성탄 선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탄절은 그냥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선물을 주는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물로 예수님을 그냥 내어 주셨습니다. 대림 4주간 동안 들은 성경에 나오는 몇 가지 기적적이고 신비로운 아들의 탄생이야기가 말하듯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은 그들의 노력이나 의로움의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고받는 성탄 선물처럼 아무런 이유와 대가가 없는 순수한 선물, 하느님이 인간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셔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선물이 온전하게 하시려고 남자의 도움 없이 한 여인의 몸에 잉태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우리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셔서 주신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 또는 관심과 도움 그리고 그를 위한 희생입니다. 다 내어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깝고 죄책감까지 들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탄절은 아무런 보답과 대가 없이 당신의 아드님을 내어주셨음을 기억하는 날이라서 그 분위기는 사랑이고, 그래서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이에 걸맞게 하느님은 임금이나 무사가 아니라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갓난아기 앞에서 악한 생각이나 마음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굳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아기 앞에 서게 되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거기에 그 아기가 하느님이심을 안다면 그분의 낮아지심과 겸손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어떤 생각도 계획도 심지어 감사의 마음도 가지지 못하면서 숨 쉬는 것을 빼고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멈추고 말겁니다.

 

하느님은 조용히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비밀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루카 2,8)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들에서 살았고 밤에도 일을 해야 했으니 우리가 성탄 구유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의 생활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예수님은 더럽고 냄새나는 마구간 동물 먹이통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머무신 첫 집이 그런 곳이었음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참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예수님이고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죄인, 병자, 마귀 들린 이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치유해주셨음을 기억하면 그분이 탄생하신 마구간과 구유는 그분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요약하는 큰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지만, 그분은 우리의 나쁜 곳을 먼저 찾아오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잃었던 것을 되찾아주시고,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풀어 자유롭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드린 것이 없고 해드릴 것도 없는데, 하느님은 우리의 바람과 마음을 아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것도 주십니다. 예수님은 참 좋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때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던 목자들도 천사들의 말을 확인하고 기뻐하였지만 모두 되돌아갔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천사들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지만, 인간적으로 아내의 잉태 사실을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요셉 성인이 겪은 믿음의 시련이 우리들에게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엄청난 사건을 몸으로 겪었고, 이 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명확한 사실이었지만, 남들에게는 설명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이후 그 아이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루카 2,19). 사람들은 아기를 찾아보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기뻐했지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마리아는 아기 옆에 있으면서 이 일들을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마음속 깊이 담고 사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소중한 선물이라서 혹여 잃어버리거나 빼앗길까봐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깊이 간직합니다. 그리고 그곳, 내 마음 깊은 곳에 계신 하느님은 나를 다 읽어내십니다. 나 자신도 읽어내지 못하는 내 마음을 그분은 읽으십니다. 그분은 나를 아십니다. 내가 청하기도 전에 나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올 해도 그분을 애타게 기다렸고 마침내 그분은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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