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의 외딴방

[김인순]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사도 요한 대성당

김인순

에페소 성모마리아 대성당

 

점심을 먹으러 유적지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난롯가에 모여 언 몸을 녹이면서 식사를 기다렸다.

터키의 유명한 음식 중 하나라는 양고기 고치 요리가 나왔는데

맛은 생각나지 않고 강한 향신료가 힘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에페소 도시 유적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유적지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복음 사가 루카의 무덤을 볼 수 있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로 초기의 성당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곳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 공의회에서 성모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선포되었다.

 

사도 요한 기념성당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164_1296.png

이곳에 성 요한 기념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3-4세기경 이었다.
그 뒤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을 6세기에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입구에서보아도 성당의 규모는 대단했다.
성모마리아 기념성당이 붉은 벽돌로 지어진 데 비해
그보다 후대에 지은 사도요한 기념성당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것이 달랐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당 터 뒤로 오전에 다녀온 에페소 시가지 유적지가 보였다.
옛날 에페소에 살던 사람의 수는 현재의 도시인 셀축의 인구보다 더 많았다고 하는데 사실일 것이다.

성당 터에 남은 높은 기둥과 벽으로 구분된 공간들이 당시의 규모와 실내의 구조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서야 중앙제대가 있던 곳을 볼 수 있었다. 제대 벽에는 십자가 문양이 선명했다.
교회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의미로 입교자들이 물에 잠겼던 세례 터도 볼 수 있었다.
그 주변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많은 방이 늘어서 있었다.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200_0702.png

지금 남아 있는 유적만 보아도 실제 성당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초대 교회 때는 세계 7대 성당의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성당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도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 천장의 돔이 일곱 개나 되었다.
사도요한의 문헌 전승지이기도 한 에페소이기에 사도요한에 대한 공경이 대단했던 것 같다.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232_9176.png

이처럼 사도 요한 시대에 에페소에서 그리스도교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 사도가 뿌린 믿음의 씨앗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바오로 사도가 놓은 밑돌을 바탕으로 에페소는 그리스도교를 소아시아에 전파하는 준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리 평야 늪지에 큰 기둥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이 세계 칠대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신전 터라고 했다.
원래는 180여 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신전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하면서 성요한 대성당과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성당을 짓기 위해
건물을 허물고 기둥과 자재를 가져가 지금처럼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볼 때 종교가 세상에서 힘을 가지게 되면
본래의 정신은 속화되고 부유해져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면서 소멸하고 말았다.
우리 그리스도교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사랑의 정신을 잃고 세속화 한다면 그리되지 않을까.
에페소에서의 시간이 저물고 있었다. 우리는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 이즈밀 공항으로 이동했다.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에 있는 공항처럼 아담한 공항이었다.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피곤함에 지친 몸을 의자에 걸치고 앉은 모양새가 우스워서
서로 바라보며 기운 없이 실실거렸다.

이스탄불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지만 이스탄불은 인구가 1,200만 명이나 되는 터키 제일의 도시로
시대에 따라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동로마 제국시대 때는 ‘비잔틴’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을 점령하고 로마 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콘탄티노폴리스’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후 330년부터 1453년 까지 약 11년 이상을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도교문화의 중심지였고
유럽최대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1453년 점령당하여
콘스탄티노플은 이슬람교도의 지명인 ‘이스탄불’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린다.
1600년 이상 동로마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양한 동서양의 유적과 문명이 함께 숨 쉬는 유서 깊은 도시다.

8시 1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약 한 시간 정도 지나 이스탄불의 아타루르크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멀리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오리엔탈 특급열차 살인사건’과
첩보영화 ‘007’의 배경이 되었던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종착역인 시르케지 역의 불빛이 보였다.
1883년에서 1977년까지 영국-스위스-이탈리아-유고- 불가리아-이스탄불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호화로운 열차로 많은 이야기를 남긴 열차역도
20세기로 들어서서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폐쇄되어 과거의 기억을 전해주는 장소가 되었다.
밤 열 시가 다 되었지만,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는 한식당을 찾아갔다.
닷새 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이었다. 나물 종류, 두부 요리, 김치찌개들로 마음껏 배를 채웠다.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284_1715.png

우리는 식당을 나와 잠깐이지만 눈 쌓인 시내를 걸어볼 수 있었다.
밤이 늦어 조용한 이국의 거리에서 눈을 맞는 것은 또 다른 멋진 추억이 되었다.
터키 고유의 문양으로 조각된 분수대에 비치는 조명이 눈 오는 밤의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333_7243.png

내일 방문하게 될 성소피아 대성당과 블루모스크의 화려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추위도 잊고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밤 11시가 넘어 도착한 호텔은 지난 며칠 동안 머물렀던 터키 어느 곳보다도 따뜻했다.

358e69361ace81a0734aaf284e0193b6_1494229387_5466.jpg

Paper vector designed by Freepik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