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의 외딴방

[김인순] 히포드롬, 성 소피아 성당

김인순

히포드롬

 

히포드롬(hippodrome)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터키어로 ‘말의 광장’으로 불리는 공원이다.

로마 시대 마차경기장의 유적이다.

 

광장 가운데쯤에 있는 커다란 오벨리스크가 먼저 눈에 뜨였다.

15세기경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이 광장을 만들면서 이집트의 나일 강 가에 있는 카르낙 신전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랫부분에는 당시 터키를 점령했던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를 기념하는 조각이 남아있었다.

203년에 처음으로 이곳에서 마차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지금은 긴 도로로 보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광장으로 40여 개의 계단식 관중석에

20여만 명을 수용하는 규모의 경기장이었다는데 광장 옆에 블루모스크 사원을 지으면서

경기장이 지금의 크기로 줄었다고 한다.

 

그 옆으로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운반되어온 뱀 기둥이 머리 부분이 사라진 채 서 있었다.

로마인들은 경기장을 자신들이 정복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 조각상, 오벨리스크 등으로 꾸몄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여의도 광장처럼 길게 이어지는 공원에서 사람들은 산책 하고 여행자들은 옛날을 회상하고

주변에 있는 성소피아 사원과 블루모스크의 첨탑을 둘러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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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의 원래 이름은 ‘하기야 소피아(신성한 예지(叡智))’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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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혜이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이며 동방 그리스도교의 총본산이었던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325년에 처음 지어졌다.

지금의 성당은 6세기경에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안테미우스와 이스도루스가 건축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 중엽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모슬렘 오스만 튀르크의 마흐메드 2세에 의해

성 소피아 사원은 이슬람 회당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성 소피아 성당에는 4개의 미나렛(첨탑)이 세워졌다.

성당 벽을 장식했던 성화들은 회벽칠속으로 감춰졌고

이슬람의 메카방향을 가리키는 키블라(금글씨로 쓴 코란의 일부)가 걸리게 되었다.

 

어젯밤 멀리서 바라본 성소피아 성당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외관을 갖고 있었다.

화려했던 비잔틴 시대의 종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성당은

돔이 높은 그만큼 바닥의 넓이도 대단하여 안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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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먼저 왕후가 마차를 타고 올라갔다는 경사진 길을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은 복원되는 성화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성미카엘 대천사의 실물크기 사진과 상세한 설명이 전시되어있었다.

 

이 성화상들은 15세기 비잔틴 예술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의 작품으로

이 성당이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던 500여 년 동안 석회 칠로 덮여 있던 것을

1970년대에 이르러 복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 층 회랑이라기보다는 평지의 느낌이 나는 넓은 회랑을 돌며 반대편으로 돌아서자

회칠을 벗겨 내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얼굴과 마주쳤다. 사진에서 여러 번 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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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과 엄숙함, 연민이 느껴지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제대 정면이 내려다보이는 이 층 난간 앞에 섰다. 그곳은 왕후의 자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왕족은 성당 이 층까지 마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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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정면에서 방향을 조금 튼 곳에 이슬람의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키블라(금 글씨로 쓴 코란의 일부)가 걸려 있었다.

이 성당이 이슬람 회당으로 사용되던 때의 흔적이었다.

다시 경사가 심한 길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와 입구 위편에

강복하시는 그리스도의 이콘이 있는 황제의 문을 통해 성당으로 들어갔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을 최대한 줄인 넓은 실내는

중앙제대까지 양편으로 기둥을 세워 실내를 삼등분하는 서방교회건축물과 대조되었다.

계속되는 복원 공사로 실내가 어수선했다. 제대 위 천장 돔에는

회벽 칠을 벗겨낸 성모자와 성 미카엘 대천사의 모자이크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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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중앙 돔의 높이는 55m(약 15층 건물 높이) 지름이 33m에 달한다고 한다.

돔 주변으로는 섬세하게 채색된 수십 개의 채광용 창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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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으면 창에서 쏟아지는 빛들이 성당 안을 감싸 신비로운 분위기로 이끌어 줄 것이다.

 

건물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공간구조에서 발생하는 신비감과

그로 인해 천상적이면서 영적인 느낌까지도 예측한 설계라니,

참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 옆으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성전을 지어 봉헌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가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시대의 작품이라 그런지 15세기경에 만든 작품들보다 세련미가 덜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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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양편 편에 있는 많은 방의 문틀이나 벽의 문양, 문살하나까지 섬세한 도공의 손길이 느껴졌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들이기에 더 아름다운지 모른다.

 

회랑 옆 대리석 기둥에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그곳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로마에 있는 진실의 입은 이곳에서 유래된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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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가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비잔틴시대 때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백만을 넘었다고 한다.

게다가 국교가 그리스도교인 상황에서 대축일이면 이 성당에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많았을까.

명실공히 비잔틴 시대의 그리스도교의 명성과 영화를 보여주는 성당이라 할 만 했다.

 

말로만 듣던 성 소피아 성당,

초세기 그리스도교 성화와 비잔틴 시대의 최고봉인 성화들과 이슬람 건축양식을 한 눈에 보여주는

놀라운 종교 문화유적은 여러 종교의 흥망성쇠를 거쳐 이루어졌다.

길을 찾는 방법은 서로 달라도

결과적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찾아가는 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성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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