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인순] 아기 예수 피난 성당과 모세 기념 성당

우리가 탄 버스는 어젯밤에 보았던 올드카이로 중심지에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갔다.

돌담 안으로 보이는 묘지는 저마다 독특하고 고유한 종교의 문양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잘 어울려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월의 이집트가 겨울철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봄이나 가을 같은 날씨였다.

두꺼운 옷이 필요 없는 선선한 날씨로 가는 곳마다 꽃이 피어있었다.

 

지금은 동방그리스도교의 한 종파인 콥트교회가 관리하는 아기 예수 피난 성당은

공동묘지 담을 따라 들어가는 골목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들어가는 아기 예수 피난 성당은 로마양식을 본떠 만든 가장 오래된 성당중의 하나로 알려진다.

약 1,400여 년 이상 된 건물이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내부는 열두 개의 기둥으로 3단으로 나뉘어있는데

이 열두 개의 대리석 기둥은 열두 사도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보수가 잘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낡았지만 지금도 콥트교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 지붕은 노아의 방주를 본떠서 만들어졌다.

벽에는 1,400년 전에 그려진 예수님의 탄생에서 수난, 부활에 이른 생애를 그린 성화, 이콘들이 있었다.

알지 못하는 초대교회 성인들의 그림도 있었다.

이콘들을 둘러보는데 어떤 성화에는 방문객들이 기원을 적어 넣은 종이가 꽂혀있기도 했다.

 

정교회나 콥트교회 같은 동방교회의 제대는 우리 성당처럼 열린 제대가 아니고

마치도 유대 회당의 지성소처럼 휘장에 가려져 있어 사제들만 들어가 전례를 거행한다.

 

지성소는 성모님의 모습을 수놓은 두꺼운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지성소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칸막이가 쳐진 계단이 있는 동굴이 있다.

그곳이 바로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하여 지낸 동굴이었다.

그러니까 이 성당의 지성소는 예수님의 피난동굴 위에 있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동굴 내부는 제법 넓었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마태오 복음 3장 13절-15)

실제로는 하루하루의 양식에 대한 걱정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을 감수하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성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아기 예수를 돌보았을까,

하느님은 과묵하고 신앙이 깊은 성 요셉을 보내시어 당신의 아들을 지키게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는 출생부터 수고와 고통을 동반한 삶이었음을 묵상하게 해주는 장소였다.

 

회교국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이 콥트 교회의 신자들은 자식을 낳으면 손등에 십자 표시를 문신으로 새기면서까지

1,400년 이상을 신앙을 지켜왔다니 그들의 신앙이 우리 한국순교 성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닐지.

우리가 성당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관광객은 물론 많은 현지인이 들어와 기도하고 여러 이콘 앞에서 기도를 하고 나갔다

제대로 보수가 되지 않아 낡고 허름한 교회 건물을 보면서

회교국인 이집트에서 현재의 그리스도교의 위상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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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 피난 성당 앞에는 기념품 가게인지 성물 방인지 모를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어떤 상점은 규모가 놀랄 만큼 컸다.

안을 들여다보니 파라오의 두상에서부터 전신상에 이르는 조각품들과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신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사용하는 묵주까지 있어서

아마 초교파적인 성물 판매소인가보다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모세 기념 회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걸어서 채 오 분 거리도 안 되는 좁은 길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길이라고 했다.

 

이곳은 이집트인들이 관리하는 모세 기념 경당과는 대조적으로 깨끗하게 보존관리 되고 있었다.

모세 기념 회당의 내부에는 모세의 십계판 모형이 보관된 모세의 제단이 있다.

회당 중간쯤엔 두루마리 함이 놓여있는데,

그곳에 모세 오경을 보관하고 모임을 할 때마다 펼쳐 읽었다고 전해진다.

 

작고 아담한 이 회당 터는 모세가 물에서 건져진 장소이기도 하고, 모세가 광야로 나가기 전에 기도했던 장소이며

출애굽 당시에 이집트 델타지역에 살던 이스라엘인들의 출발장소로 알려졌다.

이 장소는 또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 예언자 예레미야가 설교한 장소이기도 하여

구약성경의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는 콥트교회의 부속 건물로 지은 건물이어서

AD 4세기부터 AD 9세까지는 성미카엘교회, 가브리엘교회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가 모스크 건축을 위해 교회에 막중한 세금을 부과하자 (금 1.5톤)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몇 개의 교회건물을 팔아 세금을 내게 되었다.

그때 이 회당을 유다인들이 매입하여 유대 회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슬람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1115년에 이스라엘의 랍비 벤 에즈라가 이곳을 방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이 회당을 재건하였다.

그때부터 이 회당은 유대 랍비의 이름을 따서 벤 에즈라 기념 회당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악화되기 전인 AD1965년까지 천여 년 동안

아랍지역의 유대교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왜 아기 예수의 피난성당과 유대 회당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유대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 소중한 역사를 지닌 장소를 뒤로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인도자 살아있는 모세(안내자의 세례명)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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