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꿈쟁이의 외딴방] 바오로딸들의 원천을 찾아서 5 - 케라스코(CHERASCO)

바오로딸들의 원천을 찾아서 5 


케라스코(CHERASCO)  

 

알베리오네 신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

 

알베리오네가 서너 살도 되기 전에 그의 부모는 페스키에레를 떠나 케라스코로 이사했습니다. 케라스코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지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케라스코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전에는 사르데냐 왕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793년에 프랑스와 합병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면서 이탈리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전쟁의 상흔을 지닌 도시지만 이곳에서 평화협정이 이루어졌기에 평화의 도시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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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알베리오네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 담임이었던 카르도나 선생님은 어느 날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에 대해 물었는데, 그 때 잠시 생각하던 알베리오네는 신부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로사 카르도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사제가 되는 것을 꿈꾸며 매일 기도를 바쳤고 훗날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성당으로 가는 길 앙 편에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유년시절을 지내며 오갔을 들판과 농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 어린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부모님이 내어놓으신 농기구를 들고 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고 회상하신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케라스코 지역 본당인 성 마르티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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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알베리오네 가족의 삶은 이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주일은 물론 평일에도 자주 미사에 참석했고 집에서도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여덟 살 때 알베리오네는 이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보통 성모님이 계실법한 위치에 성당의 주보성인인 순교자 성 마르티노의 성화가 있는 것이 조금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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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임신부님의 모범과 권고는 소년 야고보의 삶과 성소의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아버지처럼 따뜻한 격려로 1900년 4월 브라 신학교를 나오게 된 알베리오네가 다시 사제성소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190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은 알베리오네는 어릴 때 다니던 이곳 성 마르티노 본당에서 첫미사를 드렸습니다.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미켈레는 사제가 된 알베리오네의 첫미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성당 문 앞에는 1907년 6월 30일 알베리오네 신부가 첫 미사를 거행한 거룩한 장소라는 설명이 새겨진 동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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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15일에 바오로 가족은 이곳을 찾아와 알베리오네 신부를 기억하며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당 앞 작은 광장을 야고보 알베리오네 광장으로 명명하고 알베리오네 신부의 흉상을 세웠습니다. 흉상 아래 부분에는 “케라스코 시민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 바오로 가족수도회 창립자” 라고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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