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2월 13일 한 가지 지향

1213일 한 가지 지향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더 사랑하셨지만 가난을 퇴치하지는 못하셨다. 그 대신 당신 스스로 가난하게 사셨다. 병자들을 치유해주셨지만 병의 근원을 없애지는 못하셨다. 대신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마태 8,17). 예수님은 죄인들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당신의 목숨은 구하지는 못하셨지만 인류 안에서 죽음을 몰아내셨다.

 

이런 인류구원의 위대한 사명을 지니신 그분 머리는 얼마나 복잡하고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으셨나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9-30).”

 

예수님은 그 위대한 사명을 품고 사셨으면서 마음은 매우 가볍고 평화로우셨나보다. 한 가지만 품고 계셔서 그랬을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한 가지 바람!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사형당해 복음전도사업이 실패하고 망하는 데도 평화로울 수 있으셨나보다.

 

세상살이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는 그 일 자체가 아니라 아무런 격려와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 일거다. 가족과 동료의 무관심이 기운 빠지게 하고 마음이 무너지게 한다. 그러니 사는 게 힘들어질 수밖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웃으며 달려와 안기면 다시 힘이 생길 것이다. 배우자와 동료가 지친 어깨를 다독거리며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줘도 모든 수고와 아픔을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사실 나도 잘 못하지 않는가?

 

내가 나쁘거나 무심해서도 그런 게 아니다. 어색하고 주변머리 없고 깜빡깜빡해서 그런 것이다. ()도 그랬겠지.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이해하기는커녕 모두가 다 도망갈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니 그분이 그들에게 위로와 인정을 기대하셨을 리가 없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나의 삶이 하느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지향만으로 가난하게 그러나 가볍고 평화롭게 살기 바란다. 그러면 나의 실패도 하느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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