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월 26일(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바보가 되는 기쁨

126(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바보가 되는 기쁨 

 

교회는 복음을 전한다.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구원, 죄의 용서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심지어 교우들도 이해하기 어렵고, 먼 나라 이야기 혹은 성직자 수도자 신학자들만 사용하는 전문용어처럼 들릴 것 같다.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인 성사이다. 교회가 착하고 성실하고 봉사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그들의 노고와 아픔을 위로한다고 해석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칭찬 칭송받고, 존경과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세상이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순진하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이라고 평가되곤 한다. 한 마디로 바보 취급당하기 쉽다.

 

그러니 그렇게 살아야함을 잘 알고 또 그러기를 바라면서도 바보가 되기 싫어서 그런 삶을 포기한다. 아니 포기 당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고단하고 가난해지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구약성경에서는 남은 자들’, ‘아나빔’, ‘가난해진 이들이라고 불렀다.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에도 전통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참 멋진 사람들이다.

 

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생이 끝나는 것 같아 불안해져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인지 확인하게 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2).” 바보취급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과 말씀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고, 바보 소리 듣기를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복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성직자 수도자들이 바보가 되는 기쁨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9).”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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