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3일(성 토마스 사도 축일) 지금도 일하시는 예수님 (+ mp3)

7월 3일(성 토마스 사도 축일) 지금도 일하시는 예수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딘가에 살아 계시다고 믿는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는 방식과 달라서일까, 나는 그분들과 소통할 수는 없다. 고작해야 그립고 죄송한 마음을 소통이라면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셔서 당신 자리로 되돌아오셨다. 되돌아오셨지만 그분이 세상에 사시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이 알고 따르던 바로 그분이지만 그분이 살고 일하시는 방법은 달라졌다.

 

토마스 사도는 솔직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해치려고 했던 베타니아 마을로 가시려 하자 이를 만류하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그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했고, 예수님이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4).”고 하시자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라고 솔직하게 말했었다. 그분을 따라 함께 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했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데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묻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살아 계신 게 분명하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실 테니까. 나 같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이 세상을 모두 쓸어버렸을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와 나의 정의는 완전히 다르다. 그분의 정의는 완전한 사랑이고 구원이다. 믿음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건 신학자들의 몫이다. 우리는 지금도 일하시는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을 뵌 적도 없는 데 믿고,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은 데도 주님을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토마스 사도보다 더 행복하다.

 

예수님, 세상 속에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따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상처는 세상 모든 약자들의 그것입니다. 그 상처에 손을 대라고 저희를 부르시고 또 보내십니다. 그건 저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일하신다는 걸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 계신 곳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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