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9일 가정방문 (+ mp3)

7월 9일 가정방문

 

주교님이 방문하신다면 죄송하지만 솔직히 불편하다. 주교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 음식 준비에 옷도 잘 챙겨 입어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다. 반면에 친구가 온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만나면 된다. 만약에 집안일을 해 주는 하인을 들이거나 바깥일을 해주는 기술자를 고용한다면 참 기쁠 거다.

 

부모는 자녀보다 모든 면에서 윗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반대다. ‘밥 줘.’하면 밥이 나오고, 더러워진 옷을 벗어놓으면 깨끗해져 옷장에 들어가 있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아프면 쩔쩔매고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괴로워한다. 부모는 자녀의 종노릇을 한다. 그렇게 해서 성장한 자녀가 그들 곁을 떠나면 그때부턴 자유인이 아니라 죄인이 된다. 이십 년 넘게 종노릇을 했으면서도 잘 못해준 것만 기억 나나보다.

 

주교님이 오신다면 불편하고 친구가 온다면 반갑고 하인이 온다면 기쁘다. 만일 주님이 오신다면 어떨까? 주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에 따라 다르다. 주교님보다 높은 분이라면 오시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사정이 생겨 못 오시게 되기를 바랄 거고, 친구라면 반갑고, 하인이라면 기쁠 거다. 나의 속옷까지 빨아주는 걸 넘어 영원히 그리고 고해 사제에게도 말하기 싫은 비밀까지 다 털어놓아도 괜찮은 분이 그분이시다. 주님을 나의 은밀한 곳에 모셔서 단둘이 앉아 나의 온갖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하느님 뜻을 따르기 싫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분은 해결책을 내놓거나 충고와 교훈적인 이야기로 가르치려 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그분은 나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신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몰랐던 나의 속내까지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당황하거나 두렵지 않다.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고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시는 분이 아니다(호세 11,9).

 

주님이 나를 방문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그분을 모셔 들인다. 왜냐하면 그분은 늘 내 주위를 맴돌며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나를 조사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고, 또 나를 위해 뭔가 좋은 것을 해주시기를 바라신다. 주님은 나에게 정말 관심이 많으시다. 주님은 나의 친구요, 부모요, 하느님이시다.

 

주님, 주님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고, 저보다 저를 더 사랑하십니다.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죄가 아니라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지 않는 겁니다. 주님을 냉정한 수사관이나 무서운 심판자로 여겨 멀리하는 겁니다. 주님 앞에는 모든 게 다 드러나 있고 알몸이라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저 자신에게 자주 말해줍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주님을 멀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예수님이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건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의 큰 사랑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을 겁니다. 가장 안전한 어머니의 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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