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19일(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대축일) 사랑의 믿음 (+ mp3)

7월 19일(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대축일) 사랑의 믿음

 

지난 부활 때 노란색의 예쁜 호접란을 선물 받아 제대 앞에 놓아 장식했다. 꽃이 너무 화려해서 제대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에 장사 없으니 그렇게 화려한 꽃들도 점차 시들어 꽃잎을 하나둘씩 떨어뜨렸다. 말라버린 꽃들을 모아 다시 제대 앞에 쌓아두었다. 그리고 엊그제 마침내 마지막 잎을 떨어뜨렸다.

 

시들어가는 꽃을 치우지 않고 끝까지 제대 앞에 둔 것은 누군가 말했던 시든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앙상한 가지들만 남은 화분을 치우는데 뭉클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정이 들었나 보다. 지금은 볼품없이 되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지난 몇 달 동안 화려한 꽃으로 제대를 장식하고 있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꽃은 아름다움으로 주님을 섬기고 찬미했다. 화려함은 눈에서 사라졌지만 아름다움은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묘지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시신이나 뼛가루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섬김과 사랑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부모님의 시신이 그렇게 따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에게 두 분의 인생은 분명한 헌신과 사랑이었다. 시신이 아니라 사랑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정숙하라는 표지가 붙은 성당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거기서는 모두가 조용하다. 십자가와 제대 그리고 감실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희생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아주 잘 안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평생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아드님을 내어주셨다. 사랑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을 희생시키는 부모는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으니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 대상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내가 죄인이라는 게 싫지만 그걸 부정하면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1요한 1,10). 나의 죄를 없애주시려고 희생하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좋은 일만 해주셨는데 세상은 그렇게 좋은 분에게 아주 못되게 굴었다. 그분은 우리 모든 죄를 당신 몸에 담아 나무에 매달아 태워버리셨다. 그분이 하느님이신 줄은 성모님 한 분 빼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하느님이 죄인을 위해서 저렇게 되실 줄은 성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그분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 없고, 그분의 몸에 자신의 죄를 담지 않은 사람 없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그러니 이 말씀을 믿는 게 곧 구원이고 자유다. 믿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그 죄를 지우려고 무진 노력을 해야 할 거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구속주이신 주님, 주님의 십자가 희생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이어지는 하느님의 구원이고 사랑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저는 그 허다한 죄와 허물을 지워 없애버릴 능력이 없음을 아주 잘 압니다. 제대 앞에 두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는 것은 주님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 사랑이 그지없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답할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시든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셨으니 이제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믿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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