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29일(성녀 마르타 기념일) 캄캄한 부엌 (+ mp3)

7월 29일(성녀 마르타 기념일) 캄캄한 부엌

 

실패보다 더 괴롭고 견디기 힘든 고통은 좌절이다. 실패하면 속상하지만 좌절하면 갑자기 온 세상이 사라져버린다. 일도 가족도 친구도 다 없어진다. 친구의 배신처럼 신뢰하고 존경하는 분의 큰 꾸지람도 좌절시키는 한 이유이다. 들려도 들리지 않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삶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친구 라자로와 더불어 그의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를 사랑하셨다(요한 11,5). 그날도 마르타는 예수님을 극진히 모시려고 했는데 예수님께 아주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루카 10,41).” 그 말씀은 손님 발치에 앉아 얄밉게 말씀만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두둔하시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 섭섭한 말씀을 들은 후 마르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성경은 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 아무 일 없는 듯이 하던 일을 하지만 마음은 사라져버려 캄캄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있었을 것이다. 어느 영성가는 그가 부엌으로 가서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캄캄한 곳에 혼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다 보면 마르타의 부엌 같은 곳에 있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거나 자신의 공동체 발전을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하는 중에 갑자기 이런 곳에 있게 될 때가 있다. 마음 안에서는 슬픔부터 증오에 이르기까지 정말 온갖 부정적인 정서가 다 끌어올라 마음은 지옥처럼 바뀐다.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한순간에 뜨거운 지옥으로 변한다. 그리고 철저히 혼자가 된다. 하느님도 곁에 안 계신다. 아니 하느님도 미워진다.

 

며칠 혹은 몇 달 그런 지옥불(?)이 좀 사그라지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괴로운 과정에 예수님께서 슬그머니 등장하신다. 그분은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하느님은 완전하신 분이라 너의 봉사 헌신 도움이 필요 없으시다.’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하고 아픈 곳을 더 아프게 하는 말씀인 것 같지만, 이 말씀은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의 또 다른 표현이다. 참사랑은 보답을 모른다. 성모님 말고는 십자가에 매달린 분이 하느님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것과 같다. 예수님의 봉사와 헌신 그리고 죽음은 오직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덕에 살았다. 나의 충실함이 순수해질수록 세상은 더 온전히 그 덕을 본다. 그 대신 나는 삼위일체 하느님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마르타는 그 캄캄한 부엌에서 나왔다. 그리고 예전처럼 바쁘게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는 죽은 오빠를 찾아오신 주님을 마리아가 마중 나오지 않았다고 고발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했다(요한 11,27). 그 고백이 완전하지 않았을 것이 당연한데도 주님은 그 고백에 맞춰 오빠를 무덤에서 끌어내셨다. 같은 고백이지만 그의 신앙은 더 깊어졌을 것이고 그의 삶은 여전했지만 그의 지향은 더욱 순수해졌을 것이다.

 

주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은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이타적인 행동도 이기적입니다. 정화와 회심의 노력이 끝없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어서라도 주님 뒤를 따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때는 정말 괴로웠지만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또 언제 몇 번이나 더 캄캄한 부엌에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제가 다시 나올 때까지 밖에서 그 부엌문을 지켜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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