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8월 5일 가난한 마음 (+ mp3)

8월 5일 가난한 마음

 

성경에는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 나온다.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자기 종을 고쳐달라고 청한 백인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라고 말해서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성전 헌금함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은 그 과부 또한 예수님을 감동시켰다(루카 21,1-4). 그 백인대장의 겸손과 그 과부의 헌신 혹은 신뢰가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가나안 부인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여인의 딸은 마귀가 들려 고통받고 있었고, 예수님은 딸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강아지 취급을 받는 것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예수님을 믿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그분의 신념까지 바꾸게 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을 처음으로 파견하실 때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6).” 그 여인과의 만남으로 복음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시게 되었을 것이다. 그 여인이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모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딸에 대한 사랑인데, 예수님이 딸을 고쳐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 모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풍랑을 잠재우셨다고 하면서 그분은 자연도 지배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한다. 고지식해서 무자비하기까지 한 자연도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그 여인의 믿음이 그리고 그의 사랑이 움직였다.

 

오늘 생각하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가난한 마음이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희망을 두지 않는 마음이다. 그분만이 나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이다. 어떤 심오한 깨달음이 있어야 그런 믿음이 생긴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죽도록 사랑할 것도 없이 서로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고 인내하기만 해도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로울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들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주님, 낮아지고 작아지고 가난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들처럼 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주님 말씀에 감동받아 사랑하겠다고 뜨겁게 결심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마음이 식어 굳어버리고 제 안에서 들리는 그럴 필요 없다는 말에 홀딱 넘어가고 맙니다. 그리고 뒤돌아서 바로 후회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게 왜 지켜야 할 계명인지 알겠습니다.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부족합니다. 이기는 것만 배웠지 지는 것, 한 발짝 물러나는 것, 고개를 숙이는 것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르쳐주소서. 그러면 사는 게 훨씬 더 편할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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