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8월 23일 (연중21주일) 신앙고백의 의미 (+ mp3)

8월 23일 (연중21주일) 신앙고백의 의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하고 멋지게 대답하였다. 아무리 스승이라지만 자신과 같은 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 말씀대로 그것은 하느님이 알려주셔서 가능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분을 예언자나 환생한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라고 여기는 게 최고의 고백이었던 것 같다(마태 1614).

 

오늘날 우리는 베드로처럼 고백할 일은 없다. 다시 예수님을 뵙는 날은 세상 마지막 날일 테니 말이다. 그 대신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분께 여쭙는다. ‘이 사태는 언제 끝나는 겁니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설마 그런 질문은 하늘나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

 

베드로가 그렇게 멋지게 고백해서 행복하다는 찬사를 받고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넘겨받았지만 그가 나중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잘 안다. 그의 믿음과 삶은 많이 달랐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그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으니까. 부자와 라자로 얘기에서처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적 정도는 봐야 회개하고 믿을 수 있었을 거다(루카 16,30).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뵌 후에야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 뒤를 따랐다.

 

이 어려운 때에 임마누엘 주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고백함은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활동하시던 때도 당신의 조국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고, 서민들은 살기 힘들었다. 예수님이 그런 상황은 외면한 채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서민들의 삶을 잘 아셨고, 정치사회적 상황도 다 아셨다. 그런 중에 제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셨고 베드로의 고백에 흐뭇해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이 하늘나라처럼 평화로웠던 때가 있었던가? 부정과 불의 그리고 각종 재난으로 평화롭지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고백한다. 그런데도 나는 주님께 그 때와 해결책을 묻는다. 불안하고 조급해졌다는 증거다. 그런 마음에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들려주며 위로한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1,33.36).”

 

예수님,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바람과 희망이 현실적인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나 진통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저희가 이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잘 견딜 수 있는 힘의 근원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고통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주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일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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