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3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더 깊은 곳에서 (+ mp3)

9월 3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더 깊은 곳에서

 

베드로는 어부였다.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게 그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이었을 거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날 한 낯선 사람의 권고에 따라 그물을 던져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그는 그 낯선 사람에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비법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청하지 않고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그물을 버리고 그 낯선 사람, 예수님을 따라갔다.

 

우리는 살면서 삶의 목적이나 사는 방식을 크게 바꾸게 되는 어떤 경험을 한다. 그런 경험은 일반적으로 실패거나 죽음의 문턱에 아주 가까이 가게 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실패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반대였던 것 같다.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던 것을 차고 넘치게 얻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날 그 낯선 사람과의 만남으로 자신이 바라는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더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고, 하느님의 초대를 받았다. 하느님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베드로 한 사람만 부르신 게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시고 우리 모두가 당신 집에 살기를 바라신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베드로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벽에 달려 있는 저 십자가가 우리에게 말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좋은 일만 하시고, 마지막에는 억울한 죽음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그동안 보여준 그분의 능력이면 당신을 모함하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으셨을 텐데 말이다. 물고기를 많이 잡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하느님의 이 이상한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데 특별하고 어떤 심오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바라는 그것들을 성취하고 내가 바라는 자리에 앉는 걸 상상해 본다. 상상이지만 신나고 기쁘다. 그런데 그 기쁨 안에는 이해하지 못할 공허함이 있다. 상상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나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큰 곳간에 재물을 가득 채워놓고 기뻐하는 그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이것이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인생의 최종 결과다(루카 12,20-21). 이보다 더 허무하고 비참할 수는 없다.

 

주님,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다 허황됨을 아십니다(1코린 3,19-20). 지금 제가 알고 믿는 것이 진리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들은 대로 말하고 아는 대로 살게 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매 순간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일상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어머니께서 저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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