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내리사랑 (+ mp3)

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내리사랑

 

뉴스를 보다가 화를 낼 때가 적지 않다. 어떤 때는 욕도 나온다. 이러는 게 겉으로는 의로워 보이지만 속내는 내가 저런 불의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의로운 분노는 오직 하느님의 것이다. 우리는 남을 심판할 권한이 없으니(마태 7,1) 불의를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슬퍼하는 거다.

 

어떤 엄마가 며칠 전 마약중독으로 죽은 아들을 두고 울며 말했다고 한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들을 저 지경에 되게 한 저를 나쁜 엄마라고 욕했습니다. 그래도 나쁜 엄마라고 불렸을 때가 엄마가 아닌 지금보다 더 좋았습니다.’ 엄마로 사는 게 그렇게 힘들고 또 그렇게 좋을까?

 

전례력으로 예수성심대축일에 이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기념했던 것처럼 어제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오늘은 고통받으신 성모님을 기념한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며 이렇게 예언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불의한 일을 저지를 때 예수님은 상처받으시고, 내가 그들을 욕하고 분노할 때 예수님은 또다시 상처받으신다. 그래서 성모님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받으시고 그러는 사이 나의 속내가 드러난다. 나는 의롭고 정의롭다는 착각을 버리게 하신다. 나는 이런 현실을 두고 심판이 아니라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1베드 2,23).” 말뜻은 알겠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인이 되어주시는 바람에 우리는 구원됐고, 예수님이 상처받으셔서 우리가 나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 나쁜 엄마라고 불려도 엄마인 게 더 좋은 마음은 그 이유를 알까? 성모님은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분명 이렇게 기도하셨을 거다. ‘하느님, 저 아이 대신 제가 저 자리에 있게 해주십시오.’ 내리사랑이지 치사랑은 없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 주님의 어머니를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셨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건 아마 제가 엄마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믿지 않으면 주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엄마가 되지 않으면 하느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계셔서 저는 정말 좋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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