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16일 내 밖에 있는 진리 (+ mp3)

9월 16일 내 밖에 있는 진리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그들의 성격과 생각도 다르다. 그것이 악하지 않다면 존중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취향이 진리의 판단 기준은 아니다. 진리는 나와 상관없이 내 밖에 절대적 고독 속에 있다.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은 살아 행동하는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그분의 모든 삶이 우리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그분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증언하셨다. 그 증언이 그분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추구하기 때문이고 아직도 다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마지막 날까지 그럴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뜨겁다가 식고 어떤 때는 미움과 증오로 돌변한다. 판단 기준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본질은 이타성인데 우리는 사랑도 이기적으로 한다. 내가 좋으면 사랑하고 싫으면 미워한다. 좋고 싫음을 어쩌겠냐마는 나는 나를 구원하지 못함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주인님은 하늘에 따로 계시다.

 

개성 존중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내가 진리의 판단 기준 되면 안 된다. 우겨봐야 소용없을뿐더러 그러면 그 결과는 공멸이다.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님이 그것을 증언했고 그분의 부활이 봉인했다. 하느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내 밖에 계신 그분이 내 안에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예수님, 당신은 저의 주님이시니 저는 주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하지만 제 안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주님은 늘 그렇게 작고 여리게 말씀하시니 잘 듣지 못합니다. 특히 제 욕망이 저를 덮칠 때면 주님 말씀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갔나 봅니다. 그렇다고 사막에 가서 살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제 안의 골방에 사막을 마련합니다. 거기서는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고 제 욕망의 불길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잊어버립니다. 작고 여린 주님의 목소리만 울립니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아니 계속 그렇게 말씀하고 계셨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욕망을 하느님의 뜻으로 위장하지 않게 일깨워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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