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40119 연중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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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월19일 연중 제2주일 복음묵상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1,29)

 

보통 저녁 식사 후에는 솔과 밤 산보를 하러 바깥으로 나갑니다.

솔은 저와 함께 사는 1년 반 된 포메라니언(Pomeranian)종인 암컷 강아지입니다.

보통 솔을 안고 걸어서 십분 거리의 공민관 운동장을 찾습니다.

바닥이 고운 모래로 된 운동장이고 넓기 때문에 솔이 실컷 뛰어 놀기에는 최고인 셈이지요.

운동장에 도착하면 솔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신이 나서 이것저것 냄새 맡으며 여기 저기 뛰어다니지요.

그렇게 혼자서 뛰어다니다 보면, 저와의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면서 저를 찾게 됩니다.

밤이니까 제가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저를 찾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얼음처럼 굳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저를 찾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잠시 후, 제가 솔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 넓은 운동장을 쏜살같이 달려와서 온갖 애정을 다 표현합니다.

 

이러한 솔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우리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운동장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장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관계로 이루어진 운동장이지요.

모든 삶의 의미도, 희로애락도 결국은 그 관계 안에서 대부분 만들어집니다.

서로 다른 각자의 역사를 가진 마음들이 서로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관계이니,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어떤 일이든 우리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는 늘 한계라는 벽을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통의 경험이 많을수록 종교적이고 신앙적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신나게 이것저것 하면서 운동장을 뛰어 놀다가 갑자기 주인과 떨어진 것이 생각나고, 갑자기 몰려오는 두려움 속에 주인을 찾습니다.

그러다 주인의 모습을 확인한 후, 전력을 다해서 달려갑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하며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찾던지, 구하던지, 원하던지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자주 잊고 지내게 되지요.

 

사랑하는 딸 솔의 움직임을 끝까지 쫓아가던 저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주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을 잊고 있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나 여기 있다.”라며 무엇인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주실 겁니다.

방황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놓쳐서도 잊어서도 안 되는 것은 우리에게 보내시는 그분의 신호일 것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이 외침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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