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일, 9월 24일 후한 마음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이게 정말 선하고 정의로운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일까 의심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버릇없이 아버지의 유산을 갖고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거기가 되어 돌아 온 둘째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 이야기(루카 15,11-32),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인의 재산을 부정하게 관리한 약은 집사를 칭찬하는 주인 이야기(루카 16,1-8), 양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 이야기(마태 18,12-14) 그리고 일 끝나기 전 1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도 하루 품삯을 주는 이상한 포도밭 주인 이야기(마태 20,1-6)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들에 대해 정의롭고 공평하신 하느님이 그러실 수 있느냐고 물어오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선 성경은 윤리와 사회정의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저 자신도 하느님의 그런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면 명쾌하게 풀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질문자를 잘 이해시키지 못해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자신이 하느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헤아리지 못해서 그 비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정말 다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우리는 땅에서 살고, 하느님은 하늘에서 사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입으로만 말하지 그분의 마음이 되고 그분의 길을 배워 익히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정말 얄미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사용하는 길인데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쌓인 눈을 치우거나 망가진 곳을 고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해줘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었습니다. 그 날도 혼자 쌓인 눈을 치우며 그 사람을 속으로 정말 얄미워하며 약이 잔뜩 올랐습니다. 그런데 문득,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주님의 기도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글자 그대로 내가 용서하는 만큼 용서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정말 얄밉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 그를 용서해야겠는 생각과 함께 그를 힘겹게 미운 마음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몰론 그가 제가 그런 고민과 갈등을 했음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멈추었던 일을 계속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꼭 벌을 받아야하나?’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심판하지 않아야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건강하고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병자들과 죄인들을 불러 모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불러 모으신 사람들 은 저와 같은 사람들 또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잘 압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혼자의 힘으로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이상한 셈법을 지닌 포도밭 주인은 일꾼이 필요해서 장터로 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그들을 사주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직장은 생명입니다. 그들이 노력해서 일거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이상한 포도밭 주인이 일거리를 주었기 때문에 일도 하고 품삯도 받았습니다. 사실 그 주인에게는 일꾼들이 필요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땅의 정의와 맞지 않는 셈법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셈법입니다. 이상한 것 같지만 우리도 그렇게 계산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자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세상이 비난해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비난에 대해 그 주인은 대답합니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4-15)”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포도밭 주인의 그 후한 마음을 시기합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