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속죄의 제물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 이스라엘에게는 영광,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셨다(루카 2,30-32). 집주인이 자기 집으로 왔지만 그 관리인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양심에 통증을 느끼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면서 영혼이 칼에 찔리는 고통을 겪으셨다. 성모님은 자신을 위한 예물은 바쳤지만(루카2,24), 하느님의 것인 맏아들을 물러내는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탈출 34,30). 맏아들, 아기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바쳤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고통은 곧 예수님의 고통이다. 아니 그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된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분들의 고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이 다 드러났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믿지 않고 거부해서 하느님은 슬퍼하시고 고통을 받으신다.
죄인을 위해 심판관이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 이런 부정한 재판이 어디 있는가? 재판받는 이로서 양심이 찔리지만 고맙다. 이 재판은 부정하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해도 재판관이 그렇게 하셨으니 돌이킬 수 없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참으로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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