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영적인 사람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영적인 존재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되어 버린다. 영적이란 말은 움직이지 않거나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영이시고 완전하신 분이지만, 인간의 영은 하느님처럼 완전해지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 어제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성장 과정은 일종의 전쟁과 같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 즉 죄와 악습의 노예생활에서 자유로, 선한마음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분열된 모습에서 단일한 모습으로, 걱정과 불안에서 평화로 나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과거 자신을 다스리던 옛 주인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한다.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고 놓아주었다가 또 붙잡으러 쫓아온다. 그 옛 주인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전쟁과 같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집트 군대들과 직접 맞서 싸워주실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바짝 쫓아 온 이집트 군대를 보고 겁에 질려 모세에게 불평했고, 모세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대신 그들을 물리쳐주실 것이라고 안심시켰다(탈출 14,9-14). 그런데 그 사이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께 탄원했던 것 같다. 그러자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모세를 나무라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탈출 14,15-16).” 하느님께서 대신 싸워주신다는 의미가 모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었나보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은 우리 적들과 우리를 폭력적으로 다스리던 옛 주인을 상대로 우리 대신 싸워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느님은 싸우실 수 없다. 우리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도 퇴보다. ‘영적(spiritual)’이라는 말은 고요히 있으면 기도실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적인 사람은 자유, 평화, 평등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그것이 개인의 내적인 것이든,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것이든 그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또 일한다. 그렇게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은 확장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기도실에서 보내고, 매일 성체를 받아 모셔도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아무런 결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심은 실천을 담고 있다.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움직여야 하느님께서도 싸우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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