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부끄러움
인간이 아름답게 보이는 고백은 ‘사랑합니다.’보다는 ‘부끄럽습니다.’이다. 본성상 이기적인 인간이 고백한 사랑은 여전히 자신을 위한 사랑일 가능성이 높지만, 부끄러움은 이기적인 본성을 거스르는 고백이기 때문에 그 안에 거짓이 있을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고백함은 자신의 민낯과 알몸을 드러냄이지만 하느님께는 아주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영혼과 육신에 해가 되는 줄 알면서 그것을 행할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중독이 그 확실한 증거이다.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행했지만, 악의 특성에 따라 죄가 완결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잘못이고 죄임을 알게 된다. 그제야 후회하고 괴로워하며 부끄러워한다.
반대로 그럴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해가 되는 줄 깨달았더라면 그 유혹은 느끼지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그것이 죄라고 아는 것보다는 이렇게 연약하고 비참한 죄인을 위하여 아드님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좋아하시며 마음에 두시고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느님이심을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부끄러워지고 동시에 눈물 나게 고맙다.
우리는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부끄러워지고, 예수님은 부끄럽게 돌아가셨지만 의로우셨다. 당신이 당하실 일을 아시면서도 그 길을 가셨고, 그렇게 당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임을 아셨기에 그분은 평화로우셨다. 그분 앞에 언제나 우리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니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하느님께서 용서와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날까지도 이 부끄러움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보시오,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말은 듣지 않고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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