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3월 9일 이해와 인내
예수님은 속상해하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경우에 따라서 용서하고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용서하고 아니 용서해야 한다. 하느님께 만 탈렌트의 빚을 탕감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백 데나리온 빚을 진 동료를 너그럽게 더 기다려줌으로써 하느님이 그 많은 빚, 살아생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해주신다는 확신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은 베드로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의 잘못이 반복되고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힘든 줄 그가 모르고 계속 그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님 말씀대로 그와 단둘이 만나 타이르면(마태 18,15) 그가 사과하는 것보다는 더 큰 화를 불러오는 때가 더 많다는 걸 경험상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힘들어하다가 그것이 험담과 미움으로 바뀌곤 해서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도 나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천사가 아니니까. 성인들끼리 함께 살아도 그럴 거다. 하늘나라에서도 그럴 것 같다.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지 않으면 불편함, 미움, 험담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의 용서는 대부분 이해와 인내다. 그리고 가끔 그런 그를 돕고 배려해줘서 하느님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의지인지 은총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런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 탈렌트 빚을 졌지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고 즐긴다고 했다. 용서하는 만큼만 하느님의 자비를 확신한다.
예수님, 제가 할 수 있으니 하라고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해하고 인내합니다. 그리고 의도한 게 아니었어도 그가 불편했다니 미안하고 주의하겠다고 말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번만 더 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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