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예수님의 자리
바오로 사도는 정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참으로 불행할 거라고 했다(1코린 9,16). 그러면서도 이 일보다 성인이 더 바랐던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는 게 자신에게는 더 이롭다고까지 했다(필리 1,21).
성인이 광신자인 것처럼 들리지만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 그것도 보람된 일이라고 했으니(필리 1,22) 광신자는 분명 아니다. 그의 신앙이 맹목적이었다면 자살했을 거다. 성인에게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둘 다 좋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역시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거라고 고백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필리 1,23).”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충실하게 일하고, 내일 떠날 수 있게 가볍게 사는 마음이 어떤 건지 가르쳐주는 것 같다.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애착이란 말로 집착을 위장하지 않는다. 혹시 애착이 있다면 그건 단 하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거다.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종교의 자리가 점점 작아진다. 그 대신 인권 복지 평등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들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해가는 것 같다. 나는 알고 믿는다. 이 땅의 모든 선하고 의로운 지향은 모두 우리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것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하고 선포하셨다. 교회밖에 구원이 있으니 없으니 하는 논쟁은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그 보편적인 가치를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자리에 앉히지 않는다. 그 자리는 영원히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자리이다.
예수님, 요즘은 주님께 대한 신앙이 더욱 순수해지고 사랑이 더욱 진실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성이 없으면 신앙은 광신이, 사랑이 없으면 신앙은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삽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상식을 뛰어넘는 초대를 받을 때 주저하지 말고 그에 응하게 도와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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