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집
숲에 얹혀사는 집을 짓고 싶다. 따뜻하며 시원하고, 맑은 날은 밖으로 나가고 궂은 날은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집이다. 여럿이지만 혼자 있고, 집안은 단순하고 투박해서 공간이 살아있으며,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집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쉬면서 실컷 울 수 있고 그 눈물 뒤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집이다.
좋은 설계자와 시공자 그리고 돈도 필요한데 아무 것도 없다. 힘내어 일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주님께서 내 소원을 이루어주실까? 그런데 큰 아파트도 1-2년 안에 후딱 지어버리니 그 조그만 집은 수개월이면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과 돈이 아니라 그 마음이 문제다.
건축물을 보면 설계자와 시공자의 마음이 보인다고 한다. 내 마음이 쉼터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내 안에 참 좋으신 하느님이 사셔야 한다는 말이다.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를 집에 비유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하느님이 허락하시면 그런 집을 지어 세상에 내주고 싶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와 선물이 너무나 많은데 갚아드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때가 올까? 그런데 그런 때는 집을 지을 때가 아니라 내 마음이 쉼터요 하느님의 집이 되는 때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집을 지어주시겠지. 나보다 당신이 그런 집을 더 원하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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