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더 큰 보속보다는 더 많은 사랑
분심과 잡념은 기도의 반갑지 않은 영원한 동반자이다. 농담 같은 사실이다.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그를 통해 하느님과 친밀하게 통교하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분심과 잡념이 방해한다. 거의 매번 내 마음이 엉뚱한 곳에 빠져 있었으면서도 마치 뭔가 깊이 묵상한 것 같이 착각하게 하곤 한다.
왜 그럴까? 사람은 본디 그럴 줄 알고 그러려니 했는데, 어쩌면 자신의 본 모습 특히 자신의 상처나 죄로 얼룩진 더러운 모습을 외면하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은 아닐까? 하느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하느님께 야단맞을까 무서워서 외면하고 피하는 것 같다. 아직도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다.
유혹은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하느님은 죄를 싫어하실 테니까 보여드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미 다 알고 보고 계신데 말이다. 감추고 숨기고 포장하는 노력은 그분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날 아담과 하와가 나무 뒤에 숨은 걸 하느님이 모르시고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을까(창세 3,9).
아주 오랜 전에도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이렇게 고백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창세 8,21).”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인간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이 내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모르는 체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고,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씻기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선악과를 따먹어서인지, 주님의 은총에 목마르게 하시려는 것인지(로마 5,21), 어떻게 내 안에 그런 것들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아직 끝까지 해보지는 못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것들을 모두 내 안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깨끗해지고 싶고 하느님께 잘 보이고 싶으니 어떻게 하나. 동구 밖에서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속없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와 당신의 아드님마저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저를 잘 모릅니다. 아니 알 수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주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주어진 시간 동안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에게는 저희의 거친 모습을 그대로 안아주는 부드러운 가슴이 필요합니다. 아프면서도 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바로 그분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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