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지키지 못하는 약속
만일 다시 태어나 수도서원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서원한 것들을 다 지킬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거짓 맹세를 하면 안 되고, 주님 앞에서 한 맹세는 물론이고 사람들과 한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 잘 알지만 잘 못한다. 지금껏 아침에 해가 안 떠오른 적이 없다. 간혹 몸 어디가 아프면 고민만 하다가 결국 병원에 간다. 내 몸인데도 아는 게 없다. 의사도 이 궁리 저 궁리, 이 약 저 약을 처방하는 것을 보면 이 몸뚱이 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하늘처럼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고 수십 년 함께 살아도 이 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내가 무슨 맹세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 5,34).” 참 고마운 말씀이다. 우리 처지를 참 잘 아신다.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해서 괴로워하지 말고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맹세는 못하지만 최소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이지는 안다. ‘예’할 것과 ‘아니요’할 것 정도는 안다. 비록 며칠 못 가는 결심이지만 주님께 약속드린다. 나는 주님께 약속드리지만 주님은 내가 천지분간도 못하는 아이는 아니고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정도로 알아들으신다. 사흘 후면 또 용서를 청하고 똑같은 약속을 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자꾸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은 나의 진실한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약속드리는 그 시간만이라도 나는 천사처럼 주님과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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