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작 뒤로(연중 19주일, 8월 13일)
연일 끔찍한 무더위에 지치는데, 미국과 북한 지도자들의 말 폭탄에 더 짜증나고 견디기 힘겨운 여름입니다. 남북대치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생활합니다. 자기나라에서 전쟁하지 않는다고 마치 동네 꼬마들 말싸움하듯 함부로 말을 내뱉는 미국 대통령이나, 질풍노도 유아독존 청소년처럼 앞뒤 안 가리고 도발하는 북한 지도자나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둘 다 미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고, 평화를 원하며 나아가 대화를 통한 통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면서도 그 뒤에서는 북미 대화를 위해 수개월째 물밑 접촉이 있어 왔다는 소식을 접하니 더욱 화가 납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의 위협 속에서 우리가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원인은 우리는 그런 상황을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뉴스를 보는데 한 형제가 정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라 다니고, 한 나라를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핵폭탄을 수천 개씩 가지고 있는데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일상에 더욱 충실한 것일 것 같습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오늘 자신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던 한 철학자의 말이 기억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곧 신앙의 표현입니다. 일상은 매일 그렇고 그런 일들의 연속입니다. 일상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일상성은 평화의 상징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를 그럭저럭 그렇게 저렇게 보냈다면 평화로운 하루를 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하는 일상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변해야 합니다. 아니 성장해야 합니다. 인생은 긴 신앙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우리 안에 심어진 신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생활하면서 자라납니다.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거나, 수도생활을 시작하거나, 어떤 특별한 피정이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져 평생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가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도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 유혹과 실패를 겪으면 그 뜨거움도 식습니다. 때로는 신앙에 회의가 들고 의심도 생깁니다. 혼자서 그렇게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유별나 보이기도 하고, 혼자만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나갔던 제자들은 풍랑에 시달렸습니다. 그 거친 물결 위로 평온하게 그들에게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호기 있게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말씀드리며, 실제로 주님처럼 그 거친 물결 위로 평화롭게 걸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주님만 보고, 그분의 말씀 그대로 시작했을 때는 물 위를 평화롭게 걸을 수 있었지만, 거센 물결을 보자 겁이 났고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모습은 우리의 신앙여정, 인생여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복잡다단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마치 그 위를 걸어가듯,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듯이, 아직 하느님과 하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분과 하나인 것처럼 살아가고 싶지만 우리의 현실은 거센 물결을 보고 겁을 먹고 그 물속으로 빠져드는 베드로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물에 빠져들 때 베드로는 다시 주님을 보며 다급하게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마태 14,30).”하고 외쳤고, 그분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끌어 올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배에 오르시자 풍랑도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주님이 사라지고, 우리 마음에서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의심을 품기 시작할 때, 한 마디로 우리 삶에 주님이 계시지 않거나 하느님, 영원, 영혼, 구원 등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현실에서 한 발작 물러서서 나와 우리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마음이 이토록 메말랐을까? 이 갈등과 불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조급할까? 잠시라도 자신의 삶에서 한 발작 물러나서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합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러는 사이 벌써 마음은 평온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지 못해도 그렇게 됩니다. 주님을 뵙거나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그렇게 됩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그분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시편 46,11) 그분은 벌써 우리를 물속에서 빼내주십니다. 죽음의 위협을 피해 도망 다녔던 엘리야도 거친 바람, 지진, 불 속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았습니다(1열왕 19,9-13). 우리는 거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그 위를 평온하게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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