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치유
베드로는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다. 그는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슬피 울었다. 그런 자신이 저주스럽고 정말 죽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비겁하고 한심한 사람인 줄 몰랐다가, 그것도 사랑하는 스승을 모른다고 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들켜 버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그를 더 괴롭게 하고, 슬퍼하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런 자신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에게는 과거로 되돌아가서 다시 바로 잡고 싶은 아픈, 부끄러운 기억들이 한 두 가지씩은 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바람이 있다. 참 이상하다. 감추고 싶고 또 동시에 털어 놓고 싶다.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지만 아파서 치유 받고 싶은가보다. 한 마디로 거기에서 해방되고 싶은가보다.
자신의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손 등에 있는 흉터처럼 평생 잊지 못한다. 치유는 그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를 많이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가 그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놓게 하셨다. 직접 묻지 않으셨지만, 주님께서 세 번째로 물어오셨을 때에 베드로는 자신의 그 과거를 떠올리게 된 것 같다. 서운해서 슬퍼진 것이 아니라 털어놓아서 가벼워진 것이다.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치유의 끝이 아니었다. 주님은 명령하셨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죄에 대한 벌을 받아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이어감으로써 치유 받는 것이다. 그렇게 치유는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가진 채로 주님을 따라 주님의 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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