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하느님 말씀을 듣는 곳
권위는 아름답다. 그것은 그 앞에 선 이들의 복종 때문이다. 순종은 힘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그의 사랑과 헌신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더러운 영은 한 눈에 그분을 알아보았다. 더러운 영은 나의 이기심과 자애심 안에서 산다. 쫓아내고 싶지만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존재,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이라야 그것을 나에게서 쫓아낼 수 있다. 그분은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까지도 나와 함께 계시려고 죽을 수 없는 분이 죽임을 당하셨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의 순종으로 하느님 권위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사랑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지만,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으려고 하니 나의 믿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나의 선택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아름다운 권위가 드러나기를 바라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순종해야 할 말씀을 어디서 어떻게 들을 수 있나?
성경은 너무 두껍다. 교회의 가르침은 아름다운 말들이지만 이해하려면 머리가 아프다.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그것으로 여기자니 왠지 미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덫에 걸리는 것 같아 찜찜하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이기심과 자애심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당신의 말씀을 꽁꽁 숨겨 놓으셨을 리가 없다. 그렇다, 그분의 말씀은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듣는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나의 순수한 지향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 아주 쉽다. ‘예수님∼’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이기심과 자애심 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 더러운 영은 화들짝 놀랄 것이다. 거기에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 그놈은 그 즉시 도망갈 것이다. 비록 내가 넘어져도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고, 비틀거리지 않고 내가 가야할 길을 반듯하게 걸어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1테살 5,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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