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올바른 제물
하느님은 아벨이 바친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카인의 제물은 그러지 않으셨다. 아벨은 가장 좋은 것을 카인은 그렇지 않은 것들, 쭉정이를 봉헌했을까?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제물이 전혀 필요 없는 분이시니 제물의 좋고 나쁨을 두고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 아니다.
카인은 하느님이 자신의 제물을 굽어보시지 않자 몹시 화를 내며 기운이 빠졌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6-7)”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제물봉헌과 옳은 행동은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하느님께 합당한 제물을 바치지 않아서, 옳게 행동하지 않아서 하느님은 기뻐하지 않으셨고 자신도 기쁘지 않았으며 그런 그 앞으로 죄악이 다가왔다.
영리한 종교인들은 아벨과 카인의 제물봉헌을 비교하며 신도들의 헌금과 기부를 유도하지만 이는 정말 하느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일이다. 우리 하느님은 아드님까지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에게 더없이 후하게 베푸는 분이 아니신가? 그런 분이 헌금의 액수 때문에 기뻐하고 화내실 리가 없지 않은가? 이는 거의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에 가깝다. 제물봉헌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이다. 올바른 제물을 봉헌하지 않은 카인은 하느님과 멀어져 기운이 빠졌고 그 틈새를 노리던 죄악이 그를 지배해서 동생 아벨을 죽이게 하였다.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올바른 제물과 그분이 기뻐하실 옳은 행동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해주셨고 이천 년 넘게 같은 가르침을 듣고 있다. 그런데도 올바른 제물을 봉헌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대한 보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행과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을 닮은 행동이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요구한 바리사이들(마르 8,11)을 비난할 수 없다. 그분이 일으킨 기적과 선행은 인정하지만 그분이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매일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면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현존을 찾는다. 아니 그것을 느끼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마음을 닫아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믿음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 믿음으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행을 한다. 그 올바른 제물봉헌으로 그는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 사신다. 무엇을 더 바라나?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셨던 주님의 마음을 가르쳐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소서. 아멘. |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