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0월 2일(수호천사) 완전한 종속

이종훈

10월 2일(수호천사) 완전한 종속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들은 거룩하거나 의롭지 않고 소위 말하는 속물들이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들이 예수님께 거는 기대는 그냥 세속적이었다. 그분이 곧 임금이 될 테니 자신들은 개국공신처럼 서로 높은 지위를 나눠 갖고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그 때에 임금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게 해달라고 청했고(마르10,37), 그들 중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지 논쟁도 하였다(마르 9,34). 게다가 예수님을 돈 몇 푼에 팔아넘긴 이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스승이 옥좌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계시고, 임금이 아니라 죄인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시간이었다. 누가 가장 크냐는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가장 작은이, 어린이를 그들 한 가운데에 세우시며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2-4).” 하고 대답하셨다. 그런 일을 예고하신 셈이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설명을 들으면 어린이는 낮아짐을 상징한다. 높아지려는 의도를 가진 거짓 낮아짐이 아니라 너무 작고 어려서 부모나 어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완전한 종속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하느님이었다. 보호와 양육, 즉 나의 삶이 절대적으로 그분들에게 속해있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런 마음을 지닌 이들의 것이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삶이 그분에게 완전히 종속된 이들의 나라이다.

 

부모는 하느님이나 슈퍼맨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어쩌면 그런 척하느라 사는 게 더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수도생활의 햇수가 더해지며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나의 죄스러움이다. 어둠 속에 발견한 아름다운 빛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빛보다는 그것에 비추어진 자신의 허물과 상처 그리고 죄스러움이 더욱 잘 보인다. 그리고 그 죄스러움은 뼈와 신경계 속으로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죽지 않고서는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늘 그 자리다. 우리는 훌륭한 부모도 충실한 제자도 아니다.

 

예수님은 큰 사람이 아니라 작은 어린이가 되라고 분부하셨다.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에게 완전히 종속되어야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결코 들어갈 수 없다. 고백소에서 부끄러운 과거를 마치 남 얘기하듯 말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그 말씀 때문이다. 자신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하지 않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믿어서 구원받는다. 완전한 종속이 구원이다.

 

예수님, 주님은 사람을 잘 아시니 저를 잘 아십니다. 저도 모르는 것도 아십니다.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니 제가 무엇이 부끄러워 숨기고 감추며 위선을 떨겠습니까? 그 위선의 무게가 저를 짓눌러 삶이 무겁고 어두워집니다. 모든 것이 주님 앞에서는 환하게 드러나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부끄러움은 잠깐, 나머지는 신뢰하며 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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