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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하느님의 축복인 평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이종훈

하느님의 축복인 평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의 삶이 어렸을 때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고, 또 어른이 되는 길은 참 어렵고 외로운 길임을 알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학교도 안 가도 되고 공부 숙제 시험에서 해방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무엇인가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뒤지면 정답을 찾을 수 있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여쭤보면 올바르고 선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된 저에게는 교과서도 여쭤 볼 부모님들도 안 계시니 그런 시간이 오면 결정하는 일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외롭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여쭤 볼 선생님, 기대고 의지할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특히 인생 대 선배이시고,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이 계시지 않음이 외로움의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나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분들이라서 나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가끔 두 분 살아 계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이 크게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분이 아니셨고, 어머니는 이 복잡한 일들을 의논할 수 있는 상담자는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들 나이가 되고나니 그것을 더 잘 알겠습니다. 그분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 한 사람일뿐이고 나처럼 죄인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자각이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을 지워버리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여쭤보고 싶고, 기대고 의지하고 싶습니다, 어떤 누군가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셔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을 밧줄로 빼내듯이 아니라, 스스로 이 수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그 밖으로 빠져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율법 없이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규칙위반에 대한 벌도, 이래야 좋은 지 저래야 좋은 지 갈팡질팡하는 일도, 결정한 그 일이 잘못한 일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약속이고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있는 분들은 하느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는 입에는 있지만 마음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엄마를 부를 때 가지는 친밀감과 신뢰는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느님을 그렇게 부른 사람이 예수님이 처음은 아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대해 그분이 지니셨던 친밀감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빠, 아버지 하느님을 찾으시며 청하시고 또 아버지의 뜻에 당신을 맡기셨음은 그분이 하느님을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셨고 그분을 얼마나 신뢰하셨는지 알려줍니다(마르 14,36). 그래서 그분은 그 모진 수난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당신을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까지 용서해달라고 청하실 정도로 평화로우셨을 겁니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또 다시 하느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평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무한히 신뢰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축복일 겁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이분을 세상에 낳아주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영을 따라 하느님을 살갑게 느끼고 무한히 신뢰해서 언제나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실 겁니다.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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