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29일 떨구는 지혜

이종훈

11월 29일 떨구는 지혜

 

도시에 다녀온 한 형제가 여기 나뭇잎은 다 떨어졌는데 도시는 아직 아니라며 거기는 덜떨어졌다고 농담을 했다. 사계절이 있어서 참 좋다. 대자연의 큰 변화를 볼 수 있음이 좋다. 그중 요즘은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11월이 위령 성월로 지정됐나 보다.

 

죽음을 억지로 외면하는 이는 정말 덜떨어진 사람이다. 죽음이 이미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자신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매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한 쪽으로 그리고 하늘로 향해 흐른다.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어디서는 태어나게 하고 또 다른 어디서는 죽인다. 이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만드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신다(신명 32,39; 1사무 2,6).

 

계절은 순환하고 그 안에서 사는 나는 영글어간다. 내 안에서 좋고 맛난 열매를 맺어지기를 바란다. 세월이 쌓여 주름이 늘어가는 만큼 성덕이 커지지 않는다. 그것은 저절로 그냥 되지 않는다. 나무가 줄기를 뻗고 잎을 내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다 똑같아 보여도 맛은 다르다. 한 입 베어 물어 탄성을 만드는 과일이 있는가 하면 바로 뱉어내게 하는 과일이 있다.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수행의 공통점은 비움이다. 비워서 채워진다. 무너진다고 슬퍼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운 만큼 채워지고 무너진 만큼 다시 세워질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예수님은 당신을 다 비우셔서 세상을 다 당신으로 채우셨다. 아니 채우신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루카 21,33). 사라지게 되어있는 것들은 사라지게 내버려 두고 영원히 남을 것에만 마음을 둔다.

 

예수님, 세상이 주님을 알게 된 지 2천 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2천 년이나 됐고 교회는 엉망이니 하느님은 계시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천 년도 당신께는 지나간 어제 같으니 고작 이틀밖에 안 됐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엉망인 건 오늘만이 아니었으니 이게 인간의 일이라면 교회는 망해도 열두 번도 더 망했을 겁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살아계시고 주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다 알지 못하고 그럴 수도 없지만 믿습니다. 이 믿음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께서 두 손으로 전해주시는 하늘의 지혜를 제게도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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