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참 사랑의 힘(연중 2주일, 1월 15일)

이종훈

참 사랑의 힘(연중 2주일, 1월 15일)

 

이사야 예언서에는 ‘주님의 종’ 노래가 4개(이사 42,1-7; 49,1-7; 50,4-9; 52,13-53,12)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노래들은 장차 오실 구세주, 메시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4개의 노래가 그리는 구세주의 모습은 힘이 없어 보입니다. 혼란스럽고, 불의한 이 세상을 바로잡고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우리들을 구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강력한 군주나 악인들을 처벌하는 심판자의 모습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없이 온유하고,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지배자들에게 경멸을 받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합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악인들과 죄인들과 함께 묻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조용하고 온유하지만 당당하고, 강력하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그분이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요한 1,29-30).” 예언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모습들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어린양을 두려워하거나, 그것을 보고 가슴 뛰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린양은 우리를 위한 제물로 희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거기를 탈출하면서 죽음의 저주를 피하는 결정적인 도구로 사용된 것이 바로 그 어린양의 피였습니다(탈출 12장). 이스라엘의 노예생활과 아무 관계가 없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그들은 노예생활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고 그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이사 53,7).” 그분은 외형적으로 가난했고 약했습니다. 강력한 군주나 두려운 심판관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참 강했습니다. 그분은 단순하고 쉬운 말들이었지만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고(마르 1,22) 더러운 영들도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쫓겨났습니다(루카 4,36). 그분은 부자도 군주도 아니었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 성공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죄인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셨지만 이제 그분의 인생은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약했지만 참 강했습니다. 사람들은 구세주 하느님은 강력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참 하느님의 전능은 힘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시며 갈대가 부러졌다고 해서 아예 꺾어버리지 않으시고, 불이 꺼져간다고 훅 불어 꺼버리지 않으십니다(이사 42,3).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지만 그분은 이 세상에서 힘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 힘,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 매력이 있는지 우리는 아주 잘 압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힘과 권력에 대한 유혹이 세상을 얼마나 시끄럽게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지 우리는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참 권위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이 가장 큰 힘이고 그것으로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도 이것을 잘 몰라서 예수님이 하느님이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요한 1,31). 아니 하느님의 사랑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부(富)나 권력이 아니라 그것들이 보장해 줄 것 같았던 그것입니다. 즉 생명,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와 권력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다 갖고 싶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워 익히고 그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면 됩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전해 받는 통로입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참 하느님의 마음은 그렇게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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