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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송구하고 고마운 선물

이종훈

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송구하고 고마운 선물

 

마구간과 구유 그리고 선물은 성탄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그것들은 하느님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이 낮아지시고 우리들 모두의 양식이 되셨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선물을 주셨다. 그래서일까 성탄절에는 생일이 아닌데도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난 것 같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우리를 위한 참 귀한 선물이시다.

 

성탄절에 우리 교우들마저도 마구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 앞에서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정서를 갖는데, 사실 신혼부부였던 마리아와 요셉의 입장이 되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안쓰럽고 슬퍼해야 한다. 첫 아기를 더럽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낳고 동물들의 먹이통에 뉘었고, 게다가 그의 침대가 되었던 지푸라기는 갓난아기의 연한 살을 찌르는 침과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구간 구유는 예수님이 앞으로 그분이 어떻게 사실지 예고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 하느님이셨지만(요한 1,3), 한없이 낮아지셔서 당신의 피조물 중의 하나가 되셨다. 세상을 지어 만드신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 그분은 여기서 사시면서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셨다. 가르쳐달라면 가르치셨고, 병을 고쳐달라면 고쳐주셨고, 마귀를 쫓아내라면 그것들을 멀리 쫓아내셨으며,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셨다. 오라면 가고, 우리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면 발길을 돌리셨다. 그분은 온 누리의 임금이셨지만 모든 이들의 종처럼 사셨다. 마땅히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만나는 모든 이를 섬기셨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죄를 없애주시려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분이 죄인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 위에서 참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 허다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사실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보지만, 사실 아직도 괴로워하면서도 똑같은 죄를 반복하는 걸 보면 시간을 되돌려도 그러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주님의 희생과 용서를 믿는 것 말고는 용서받을 다른 방법이 없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정말 염치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시고 사셨다. 그분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형제를 용서하고, 스스로 낮추어 이웃을 섬기고, 당신에게 해드리고 싶은 그대로 주위의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주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당신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그대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이고 온 인류를 위한 선물이다. 그분은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다. 한 처음에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던 그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 새로운 인류, 그리스도인들을 지어내신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해서 나도 꼭 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나? 이타적으로 살면 큰일 나나? 상처받고 손해를 보면 꼭 미워하고 앙갚음해야 하나? 쉽지는 않겠지만 그냥 용서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못하겠으면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맡기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살면 바보가 되겠지. 그렇다 세상에서 바보가 되는 게 주님이 지어 만드시는 새로운 인류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스승이요, 형제요 친구로 그리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세상이 스승을 미워했으니 그 제자들도 미워할 것이고, 형제요 친구가 바보 취급을 받았으니 그들도 바보가 될 것이다. 종들은 주인의 분부대로 움직인다. 그 주인은 후에 충실한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띠를 매고 그 충실한 종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그 종들을 얼마나 행복할까?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그리고 섬김을 받을 때보다는 섬길 때가 더 행복함을 그렇게 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상에 비하면 그런 행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내가 손해 본 것에 백 배 되는 상을 받고 하느님과 영원히 산다(마르 10,30).

 

세상은 크리스마스라고 이유도 모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어제에 이어 또 먹고 마신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구간 구유 앞에서 그 신혼부부의 안타까운 현실을 안쓰러워하고 그 아기의 울음을 듣는다. 그렇지만 이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모두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고 믿기 때문에 정말 죄송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고마워한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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