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월 21일(성 아녜스) 참 좋으신 하느님

이종훈

1월 21일(성녀 아녜스) 참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가 목사인 친구가 있었다. 종교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대학생이 되어 술자리에서 종교 얘기를 하다 성체 교리를 언급했다. 성체는 굶주리는 이에게 주는 양식이며 병자들을 위한 치료제인데, 왜 주일미사에 빠졌다고 성체를 못 모시느냐고 물었다. 한 끼 굶었으니 더 많이 먹어야 하고, 죄를 지어 아프니 건강한 사람보다 먼저 먹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대답을 못했다.

 

어떤 본당 제의실에 갔더니 게시판에 전례력에 따라 제대초를 켜는 순서가 적혀 있었다. 제대 앞 동선까지 화살표로 자세히 그려 있었다. 숨이 막혔다. 제대초 켜는 순서와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냥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 알았지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정이 생기면 학교는 결석해도 괜찮지만 주일미사 궐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하느님은 매우 무서운 분이고, 나의 모든 것을 뒤에서 지켜보며 감시하시는 분이었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저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의 마음을 슬프게 해드린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하느님은 마음을 보신단다(1사무 16,7). 이는 더 두려운 일이 아닐까? 나쁜 생각들, 미움, 욕심, 욕정 이런 것들이 늘 담겨 있는데... 그것까지 보시다니. 하느님이 감시자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그분이 사랑이라면 세상 편한 일이다. 변명도 필요 없고 감추고 치장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추수 행위를 한다고 고발했지만, 예수님은 배가 고파서 밥 먹는 거라고 변호하셨다. 그분은 더러워진 발을 씻겨 주셨고 법대로 하면 지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해주셨다. 그러니 그분 앞에서는 부끄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믿자.

 

주님, 아무리 믿는다고 고백해도 그 고백 끝에는 늘 의심이 달려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외쳐도 그 안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 어쩌지 못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잘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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