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2월 1일 떠나기

이종훈

2월 1일 떠나기

 

점점 편하고 간단한 게 좋다. 그런데 그런 것들 대부분은 익숙한 것들이다. 수십 년 함께 살아온 이 몸도 그렇다. 여기에는 수십 년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떤 것들, 특별히 아주 어렸을 때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인 것들은 뼈 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나에게 내린 명령인지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원하지 않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 후회하면서도 자꾸 그렇게 하고야 만다. 그러니까 익숙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다섯 살이었다(창세 12,1-4).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문구가 있지만 IT 기계 업그레이드되는 게 겁나고 기계 앞에서 음식 주문하는 게 어색하고 짜증나는데 나도 그게 가능할까? 세상은 그게 더 편하고 빠르다고 하지만 나는 내 방식이 더 인간적이고 좋다고 맞서는 것 같다. 내 방식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느님 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다 바꾸어야 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그들은 물론이고 세상 어느 누구도 상상도 못했던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었다. 그들은 포악한 헤로데를 피해 고향을 떠나 이집트에서 이민자 생활을 했고, 돌아와서도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또다시 타향살이를 해야 했다.

 

성경은 요셉이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들어 그렇게 했고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해석한다(마태 2,15.23). 그런데 요셉 성인이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은 없다. 약혼녀와 아기를 보호하고 그 폭군이 두려워서 떠나고 새로운 곳으로 갔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 갔다.

 

구원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롭고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보다. 수십 년 살아왔던 곳을 떠남이 어디 그렇게 간단하고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익숙한 게 좋다고 억지를 부렸다간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게 뻔하다. 지금도 그렇게 했다가 매번 후회하고, 익숙한 것을 고집했다간 밥도 못 사먹고 버스터미널에서 몇 시간 기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떠나야 하고 어색해도 바꾸어야 한다. 다 못 바꿔도 괜찮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떠나고 바꾸려고 노력했음을 주님은 다 아시고,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거니까.

 

주님, 뼈와 세포 속까지 박혀 있는 이것들을 도저히 다 갈아치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매번 패배하지만 언제나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라고 믿기에 넘어져도 툴툴 털고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떠나고 도전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저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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