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2월 13일 인내와 겸손의 선물

이종훈

2월 13일 인내와 겸손의 선물

 

청원기도를 현실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나무라기도 하지만, 솔직히 청원기도만큼 하느님과 우리를 가깝게 해주는 도구를 찾기 쉽지 않다.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그 기도에도 용서하겠다는 결심 말고는 모두가 청원이고, 자녀들이 부모 말고 누구에게 그렇게 쉽게 청하겠나?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여기를 떠날 때에도 잘 죽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한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나의 청원이 좀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음이다.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오랜 시간 청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께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화까지 내곤 한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거짓 결심을 하지 못하고 악한 것을 청하지 못한다. 언제나 선하고 거룩한 결심을 하고 나와 이웃에게 선하다고 여기는 것을 청한다. 그런데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더 속상하고 때론 하느님을 의심하게도 된다.

 

공동체가 매일 저녁에 모여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지만 현실은 점점 나빠지고 이런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낙담과 의심이 생길 때마다 다시 마음을 모아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의 모든 힘과 정성을 끌어모아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화해와 평화는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니 주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믿습니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 것 같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바라시니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믿게 해달라고 청한다.

 

오늘 복음의 이방인 여인은 로마의 그 백인대장(마태 8,10)과 함께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이다. 자신이 강아지에 비유되는데도 끝까지 매달렸다(마르 7,27-28). 그의 인내와 낮춤은 교훈적이지만 그의 믿음은 신비이다. 그는 마귀가 이미 딸에게서 나갔다는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그가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을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뿐이었다. 그는 그냥 믿고 돌아갔고 그리고 가서 보니 정말 예수님 말씀 그대로였다. 기적이 믿음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길 가다 우연히 얻은 횡재 같은 것이 아니라 인내와 겸손하게 청하는 사람이 받는 하느님의 귀하고 신비한 선물이다.

 

예수님, 오늘도 기도를 부탁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청원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루어진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아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모아 또 똑같은 것들을 청합니다. 제 귀로 기쁜 소식을 듣고 제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지 못해도 그들의 가난한 마음과 하나가 되어 주님 편에서 주님이 계신 곳으로 걸었음만으로도 제게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낙담하지 않고 인내하며 끝까지 주님 편에서 주님의 길로 걸어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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