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2월 20일 작은 사랑

이종훈

2월 20일 작은 사랑 

 

선교사 생활 중에 이곳저곳을 다니는 일은 거의 일상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동차 관리를 잘 해 두어야 한다. 자동차가 오래되고 많이 다니다 보니 큰 부품들도 고장이 난다. 어제 그제 자동차 정비소를 여러 번 오갔다. 한 정비기사가 오진을 하는 바람에 작업시간이 반나절 이상 걸리는 큰 작업이 헛수고가 됐다. 수리비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서 서로 아주 불편한 상황이 돼버렸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부품을 원위치 해 놓고 진짜 원인을 찾아 수리해주었다. 진짜 원인은 그거에 비하면 작업도 비교적 간단하고 수리비도 그것의 1/3수준이었다. 나야 좋고 다행이지만 그 기사와 팀원들이 이틀 동안 헛수고한 걸 생각하니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시운전 중에 팀장이 다시 한번 사과하고 그 기사도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그러니 더 미안했다. 그 기사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저녁 값이나 팀원 간식거리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또 주저하고 머뭇거려 그리 못 했다. 바보다.

 

사람 사는 데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찌 그게 전부이겠나. 어떻게 매번 손익계산만 하며 살겠나. 그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끼리 갖추어야 할 예의와 도리가 있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마음만 아니라 실제로 표현해야 한다. 어제는 하다못해 맛있는 빵이나 통닭 한두 마리라도 사 갔어야 했다. 정말 후회스럽다. 사람 사는 게 그게 아닌데 말이다. 늦었지만 오늘이라도 일하러 가는 길에 잠시 정비소 들려 어제 못한 걸 만회해야겠다. 그래야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하고 멋지게 대답했지만 잠시 후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하며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때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잘 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가시적인 성공과 힘에 의한 평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 대신 경쟁과 다툼이 필요 없고 그것들이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마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진정 평화로운 곳이다. 베드로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했다(마르 8,32). 그 자리에서 성공과 승리의 주님이고 자신의 인생역전과 대박의 꿈을 이루어줄 스승을 실패와 죽음의 길로 가시게 놓아드릴 수 없었을 거다. 그러나 바로 그 마음 때문에 그는 사탄이라고 불리기까지 야단을 맞았다. 혹시 내 마음 안에도 그런 것들이 있나 잘 들여다보고, 예수님을 주님이요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나의 신앙이 지시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주님, 매번 앵무새처럼 사랑과 용서를 말하지만 정작 작은 것도 실천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용기가 부족합니다. 멋쩍어도 한 번 해보면 다음에는 조금 더 수월해지겠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구원의 길은 영웅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게 아님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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