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9일 사람 예수님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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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사람 예수님

 

필립보가 예수님께 아버지 하느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하자, 예수님은 실망하고 답답하셨는지 나무라듯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요한 14,9-1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상식처럼 말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그분은 어떤 상태로 수십 년 사셨던 건지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의 몸에 하느님의 기운이 스며든 건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 어디에 신성이 담겨 있었던 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 사람이시고 참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을 따라 할 뿐이다. 그리고 최소한 나 같은 분은 아니셨을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하늘 위에 신비롭게 앉아서 세상을 굽어보시는 할아버지 하느님을 상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필립보도 그랬을까? 그런 분이 사람이 되셨으니 그분은 거의 먹지 않아도 건강하고, 잠도 자지 않고,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울지 않고, 불안이나 두려움 따위는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야단치거나 싸우지 않으며, 늘 산속에서 홀로 기도하면서 마법사처럼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못 산다. 예수님은 이런 상상과는 정반대로 사셨다. 우리처럼 사셨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한계 안에서 사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 우리처럼 우리와 함께 사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나를 잘 아신다. 아주 잘 아신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이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위장하며 사느라고 힘들다.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 반가울 수도 있고 또 정반대로 절망적일 수도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믿는 이들은 기쁘지만, 그분을 심판자로 알고 있는 이들은 절망적일 것이다. 예수님은 최소한 나처럼은 안 사셨을 것이라는 확신 안에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지 말자. 왜냐하면 사람은 하느님이 손수 빚어 만드시고 게다가 당신 숨까지 불어넣으신 사랑스러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고 좋으니까 사람이 되셨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호랑이나 곰 아니면 학이 되셨을라나? 그러니까 더 잘 하지 못하고 더 열심히 못 살고 더 고결하거나 의롭지 않다고 자신을 나무라거나 주눅 들지 말자. 이는 교만이고 위선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고 지금 이런 나를 하느님은 좋아하시고 사랑하신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자. 하느님께 벌 받을까봐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지만 않으면 된다.

 

예수님, 주님이 사람이셔서 참 좋습니다. 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뭐든 다 의논 드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토록 저를 사랑하신다니 주님 앞에서는 알몸이어도 부끄럽지 않고 잘하는 척하지 않아도 돼서 참 편합니다. 아직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주님을 따라 기회가 되는 대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자주 넘어지지만 제 십자가도 나름 잘 짊어지고 더뎌도 주님을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자책하는 위선의 덫에 걸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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