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23일 영원에 마음 두기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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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영원에 마음 두기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말씀하실 때 비유를 사용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군중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는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듣고 보는 눈을 가진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의 양들은 착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 뒤를 따른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요한 16,25).”라고 예고하셨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광야에서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며 못되게 굴던 이스라엘이 구리뱀을 쳐다보면 불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았던 것처럼(민수 21,8-9),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원된다(요한 3,14). 저분이 구세주이심을 믿는 이들의 눈에는 눈가리개가 없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분이다(요한 3,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온 세상에 드러난 공개적인 사건이었지만, 부활 체험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사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셨다. 하느님은 온 세상에 드러났지만 모든 이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분이 선택하신 이들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간절히 바랐던 이들인지 잘 모르겠지만, 믿으려 하지 않고 하느님을 바라지도 않는 이들에게는 나타나셔도 당신을 몰라보거나 너무 놀라 까무러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에게는 더 이상 비유와 설명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예수님이 예전에 하셨던 모든 말씀과 행동들이 이해되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어쩌면 그때부터는 믿음도 필요 없었을 것 같다. 그 대신 예수님과 함께 지낼 때는 그분의 지시를 따르면 됐지만 이젠 그럴 수 없으니 기도해야 했을 것이다. 마음에서 들리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다. 어떤 게 주님 말씀이고 또 어떤 게 내 욕망인지 식별해야 했다. 우리는 모든 걸 다 안다. 아무것도 가려진 게 없이 다 드러나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믿는 이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것이며, 끝에 주님을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게 다 드러나 있는데도 흔들리는 건 역시 세상일에 너무 휘둘리기 때문이다. 세상일과 분리된 종교는 사이비다. 그렇다고 세상일에만 몰두하면 우리가 영적인 존재임을 잊어버리게 된다. 사람은 영원, 하느님, 하늘나라 등 영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긴다. 선행과 봉사, 사회정의와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 위에 영원하신 하느님이 나를 부르셨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가난 퇴치가 아니라 가난하게 사셨고, 사회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주님, 어떤 이는 똑똑하고 운도 좋아 부유하게 살고 또 다른 이는 힘겹게 삽니다. 그러나 안락함도 고생스러움도 주님과 함께 지낼 시간에 비하면 잠시입니다.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충실하게 살지만 내일 떠날 사람처럼 세상일에서 마음을 떼어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영원한 말씀을 품으시고 기르셨으니, 저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시고 가르쳐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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