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31일 멈추면 알게 되는 것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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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멈추면 알게 되는 것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오면 길이 끊겼다. 마을로 나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했고, 며칠을 기다려 물이 빠지면 하루 종일 여름 땡볕에서 망가진 길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길이 끊기면 참 속상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비가 많이 와 길이 또 끊겼다. 그런데 속상하지 않았다. 당분간 외출하거나 마을에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속상해하던 그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몇 해가 지나서야 그걸 알았다.

 

예전에는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왔었다. 눈이 내리면 얼어붙기 전에 눈을 치워야 했다. 하루가 꼬박 걸릴 때도 있었고, 한 겨울에 옷이 땀으로 다 젖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또 눈을 치우다 잠시 멈추어 허리를 폈다. 그러자 눈 덮인 산의 아름다운 광경이 보였다. 감동하고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몇 해가 지나서야 그걸 보았다.

 

예수님이 오늘 여기 계시다면 우리는 그분의 설교를 모니터로만 들을 수 있을 거다. 그분은 오늘도 그날 회당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말씀을 하실 거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잠시 활동을 가능한 멈추어야 하고 이 무더운 날씨에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붙들어 세웠고 마스크를 씌웠으며 거기에 이웃과의 만남도 경계하게 만들었다. 온 인류가 그 작은 놈의 노예가 된 것 같다. 많이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 녀석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길은 현재로선 그게 최선인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래야 한다. 잠시 멈추면 그저 바쁘게만 다니느라 못 봤던 것들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해방 약속과 그에 대한 우리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세상을 가리키고 있는지 조금 더 알게 될지도 모른다. 잠시 멈추면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예수님, 제 안에는 함께 있을 수 없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죄로 기울어지는 마음과 하느님을 따르려는 마음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마음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죄를 싫어하면서 죄를 지으니 저는 그것의 노예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저보다 훨씬 더 강하고 게다가 보이지도 않으니 맞서 싸울 수도 없습니다. 제가 그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는 길은 힘을 키워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적의 공격이 시작될 때 잠시 멈추고 그것을 주님께 알리는 겁니다. 맞서 싸우면 백전백패고 멈추고 알리면 백전백승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조심하지만 너무 걱정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습니다. 이 현실이 하느님의 뜻은 아니겠지만 이런 와중에도 은혜를 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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