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20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순수해지는 시간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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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한국순교자 대축일) 순수해지는 시간

 

한국 천주교회는 백세 명의 성인이 아니라 일만여 명의 순교자가 지키고 전해 준 신앙 위에 세워졌다. 외국선교사의 공격적인 선교가 아니라 평신도의 자발적인 순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직자주의가 더 강해졌고 목숨을 내놓고 지킨 신앙이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가 된 것 같다.

 

박해받을 때 교우들의 생활과 순교할 때 겪은 고통은 하나같이 끔찍하다. 사형 폐지 국가가 되려는 오늘의 인권의식으로는 그런 형벌은 야만적인 폭력이다. 그런 고통과 언제 적발될지 모르는 불안을 견디게 했던 것은 단순한 신앙이었다. 성부 성자 성령 마리아 요셉! 그거면 충분했다. 배교한다고 말만 하면 생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도 그걸 안 했다. 아니 못 했을 거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를 부인하는 것보다 더 큰 거짓말이었을 거다. 고통스러워 배교한다고 했다가 그게 너무 괴로워 다시 옥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증언이다. 진리에 대한 증언이다.

 

박해는 세 번이 아니라 약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자신이 교우라고 밝히면 그것은 곧 투옥이고 죽음이었으니 모두 조용히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박해를 피해 산속이나 척박한 곳을 일구며 살았던 교우촌 생활이나 감옥소의 교우들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풍요로웠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교우들끼리 시기 질투 험담으로 갈라지고 심지어 다투기까지 하는 오늘의 교회 현실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날 우리 천주교회는 안정되고 부유해졌지만 영적으로는 빈곤해지고 있다.

 

한때 가톨릭교회는 명품 종교라는 말이 있었다. 우쭐해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한다. 좋은 종교라는 게 아니라 명품족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의 하나라는 뜻으로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 천주교인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들었다면 그리고 참된 교우들이 더 많았다면 그런 모욕적인 말은 생겨나지 않았을 거다. 잘 차려입고 주차전쟁을 벌이며 주일미사에 가는 사람들과 멋진 성당 마당에서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만 보았기 때문일 거다. 이제는 그나마도 못하게 되었다.

 

지혜서는 의인들의 처지에 대해 말하며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거라고 했다(지혜 3,5). 순교자들이 겪은 그 끔찍한 고통이 작은 단련이란다. 그 고통이 작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여길 만큼 그들이 받은 은혜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런 처지에 놓이면 나도 순교자들처럼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면 더 순수해지지 않을까. 다 가지고 누려도 여전히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다 내주고 빼앗기면 오히려 편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여기서 다 잃으면 저기서 여기서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아니 전부 다 가지게 되지 않을까.

 

주님, 지금은 아무도 저희를 박해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난해지라고 또 순수해지라고 요구합니다. 주님이 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진 고통을 받고 끔찍한 박해를 견디어낸 조상들의 피를 이어받은 저희들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저희는 더 순수해지고 새로워진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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