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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10월 3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다 알아들으시는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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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다 알아들으시는 성모님

 

한 청년이 물었다. “고해성사 후에 10년 전쯤 지었던 죄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나중에 그것도 다시 고백해야 하나요?” “고백하면 좋지.”하고 대답하자 잠시 후에 “그러면 고백 안 해도 되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생각난 것을 일부러 고백하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 청년은 그 이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뜬금없는 질문에 즉흥적인 대답이었지만 나도 놀랍다. 그 대답의 핵심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분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 청년처럼 생각했다. 하느님 앞에 알몸인 게 아직은 두렵지만 계속 수련하면 편해질 거다.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어린 예수님은 그곳이 진짜 당신 집이라는 걸 아셨던 것 같다. 율법교사들과 대화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슬기로운 답변에 모두가 경탄했다(루카 2,47). 열두 살 어린이가 모든 율법들을 암기하고 이해한 게 아니라 그 본질을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에게는 경탄할 일이었지만 예수님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었다. 그분은 요셉 성인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그 율법의 제정자였으니까.

 

요셉 성인과 성모님은 미아가 된 예수님을 처음에는 친척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았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사람이셨고 하느님이셨다. 우리와 같고 달랐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사시지만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니 하느님의 집에 사신다. 친구 형제라고 불러도 그분은 여전히 하느님이시다. 이렇게 뭔가 복잡하게 된 게 다 하느님 때문이다. 그분이 사람이 되셨고, 죽을 수 없는 하느님이 돌아가셨으며, 죄를 지을 수 없는 분이 죄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우리에겐 복잡하지만 예수님께는 자연스럽다.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물학적으로 요셉 성인을 닮지 않았을 거다. 요셉성인 자식이 아니니까. 혹시 성모님을 닮았을 수는 있겠다. 그분 태 안에서 계셨으니까. 그래도 예수님은 여전히 하느님 아들이셨다. 그분을 잉태해서 십자가 아래서 떠나보낼 때까지 그분에게 일어난 일들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을 거다. 성모님은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서 모든 게 환했던 게 아니라 그 정반대였을 거다. 특히 십자가 밑에서는 칠흑 같은 밤이었을 거다. 달은 졌고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시간, 그리스도교가 태동하는 때였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성모님은 모든 걸 다 아실 거다. 그런데 그분이 인류의 어머니가 되신 때는 승천하실 때가 아니라 완전한 어둠인 아드님의 십자가 밑에 계실 때였다. 우리가 그분을 어머니 엄마라고 부르며 모든 어려움과 혼란스러움을 말하며 도와달라고 청할 수 있는 이유이다. 나도 까만 코 하얀 코의 야옹 소리를 알아듣는데 성모님이 이해하지 못할 우리 이야기는 없다.

 

예수님, 성모님을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한계로 바라시는만큼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걸 아시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셨던 당신 어머니를 저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선물이니 그분은 저희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무슨 말을 해도 성모님은 다 알아들으시고 율법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해도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하느님 집에 들어갈 때까지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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